노아의 홍수는 약 4400년 전 사건이다. 한국사와 비교하면 고조선 건국(4353년 전 건국) 즈음에 일어났다.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초림 예수는 재림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고 기록했다. 이는 재림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노아의 홍수가 갖는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출처: 더 스워드 베어러)
노아의 홍수는 약 4400년 전 사건이다. 한국사와 비교하면 고조선 건국(4353년 전 건국) 즈음에 일어났다.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초림 예수는 재림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고 기록했다. 이는 재림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노아의 홍수가 갖는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출처: 더 스워드 베어러)

성경은 기독교 경서로 인류가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은 언어로 보급된 책이다. 경서, 신서로 불리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 내용에 의문점을 갖는다. 성경에 관해 일반인이 많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고증과 역사적 사실을 통해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연대기와 고증으로 풀어보는 성경<2>

 

선박공학자들이 놀란 노아방주

가장 과학적인 비율로 제작 돼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확인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아담후손

홍수경고 멸시하고 방주 안 타

노아 식구만 구원…깨어있어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노아의 홍수는 약 4400년 전 사건이다. 한국사와 비교하면 고조선 건국(4353년 전 건국) 즈음에 일어났다.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초림 예수는 재림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고 기록했다. 이는 재림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노아의 홍수가 갖는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인류는 창조주의 첫 심판인 노아의 홍수와 그 증거인 노아의 방주가 사실인지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소설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이 많지만 과학이 발달할수록 노아의 홍수는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약 3500년 전 모세가 기록한 때로부터 노아의 홍수 사건은 약 900년의 시차가 난다. 모세가 보지도 못하고 기록했던 노아의 홍수 사건이 사실이라면 성경은 인간이 믿어야 하는 신서(神書)라는 또다른 명확한 증거가 된다.

노아의 홍수는 언제 왜 일어났나?

노아는 아담의 9대손이다. 아담이 태어난 지 약 1050년 후에 노아가 태어났다. 라멕이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 노아가 태어나기 126년 전에 아담이 93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노아는 500세가 넘어 셈‧함‧야벳 세 아들을 낳았다. 창세기 6장에 따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 완전한 자였다. 당시 하나님이 패괴하고 강포한 온 땅을 멸하기 위해 택한 선지자였다. 하나님은 땅을 진멸할 것을 노아에게 알리시고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다. 홍수가 났을 때는 노아의 나이 육백세였다. 창세 역사가 시작된 지 약 1600년 후 지금으로부터 약 4400년 전에 대홍수가 일어났다.

노아의 홍수는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타락한 선민을 멸하기 위해 취한 방법이었다. 노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방주에 오르면 살 수 있도록 예외를 두셨다.

창세기 7장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시작됐고 40주야를 비가 쏟아졌다. 그로 인해 물이 150일간 창일했고,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물이 점점 감해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 다시 40일을 지나 (11월 10일경)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놓았고 까마귀는 물이 마르기까지 지면을 왕래했다. 노아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첫 비둘기는 온 지면에 물이 있어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노아에게로 돌아왔다. 두 번째 비둘기는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와 노아가 물이 감한 줄 알게 됐다. 세 번째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머무를 곳이 생긴 것이다.

노아가 601세 되던 해 1월 1일 방주 뚜껑을 열고 보니 지면에 물이 걷혔다. 그해 2월 27일에 땅이 마른 것을 보고 하나님의 명에 따라 드디어 방주에서 나온다. 홍수가 시작된 지 무려 1년 10일 만에 방주에서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노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방주에 탔던 사람은 노아와 부인, 세 아들과 며느리 이렇게 8식구뿐이었으며 그들만 구원받았다.

2010년 4월 26일 중국과 터키 국적의 복음사역자 팀이 터키 동부 아라랏 산에서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실제 내부에 들어가 방주 내부를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두드려서 나는 소리가 모두 나무임을 드러냈다. 칸칸이 만들어진 동물 우리도 발견됐다. 나무의 연대 측정결과 약 4800년 전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공개한 동영상 화면 캡쳐.
2010년 4월 26일 중국과 터키 국적의 복음사역자 팀이 터키 동부 아라랏 산에서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실제 내부에 들어가 방주 내부를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두드려서 나는 소리가 모두 나무임을 드러냈다. 칸칸이 만들어진 동물 우리도 발견됐다. 나무의 연대 측정결과 약 4800년 전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공개한 동영상 화면 캡쳐.

노아의 방주에 숨은 놀라운 과학적 사실

기독교인이 무조건 노아의 홍수 사건을 믿는 것과 달리 과학자들은 이 기록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이유로 사실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노아의 홍수가 사실일 것이라고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이유는 방주의 과학적 비율 때문이다.

창세기 6장에 기록된 방주의 크기는 장이 300규빗, 광이 50규빗, 고가 30규빗이다. 잣나무로 방주를 짓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했다.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 비율을 따지면 10(길이):1.6(너비):1(높이)의 비율이다. 이 비율을 보고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선박공학자들이다. 이 비율은 수천년간 수많은 희생의 결과 ‘가장 안정성이 뛰어난 선박 비율’로 최근에야 확인된 것이다. 모세가 글을 기록한 시점이 약 3500년 전임을 감안할 때 당시 지식수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 과학적인 비율이라는 것이 선박공학자들의 공통적 결론이다.

1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대략 45㎝)다. 기록된 방주의 크기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135m(길이)x 22.5m(너비) x13.5m(높이)로 축구장보다 길고 배수량(선박의 무게) 2만 1000t 의 대형선박임을 알 수 있다. 인류의 과학 지식과 조선 기술이 최근에야 발달 된 것을 고려하면 이런 기록이 수천년 전에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다.

인류 최초 대형선박은 19세기에 제조된 그레이트 브리튼호다. 크기는 290x51x32피트로 미터로 환산하면 약 88.4m다. 9.1(길이): 1.6(너비): 1(높이)의 비율로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비율이었다. 노아의 방주의 규모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의 저명한 조선건축가 디키씨는 미국 전함 U.S.S.오레건호를 설계할 때 노아가 방주를 건조할 때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설계 비율을 사용했다. 미 해군에서는 U.S.S.오레건호를 지금까지 건조된 것 중 가장 견고한 군함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노아의 방주 실험서 확인된 놀라운 안정성

노아의 방주는 어떤 모습일까. 성경대로 복원된 노아의 방주 모습은 흔히 아는 배 모양이 아닌 직육면체다.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방주 모형실험을 통해 이 독특한 직육면체의 대형 목조 선박은 탁월한 구조안정성, 복원안정성, 파랑안정성이 입증됐다. 당시 인간의 지식수준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완벽한 선박공학적 비율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대전엑스포장에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 신우회에서 노아의 방주를 실제크기의 1/5로 제작해 실험연구를 진행했다. 노아의 방주 안전성 실험결과 방주는 43m 파고가 일어도 뒤집히지 않아 미국 선박의 안전기준치보다 13배나 높은 복원성을 보였다.

당시 실험에 나선 과학자들은 “배가 정말 안전하려면 파도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놀랍게도 방주는 파도가 치면 파도 쪽으로 배 방향을 틀려는 성향을 보였다”면서 “처음 실험을 시작할 때 걱정과 달리 연구를 마친 후 하나님의 지혜와 설계로 방주가 제작됐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노아의 방주모형은 대전 엑스포 내 창조과학 전시장에 마련됐으며, 3개월간 약 6만명이 다녀갔다. 이후 10년을 운영했다.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방주 모형실험을 통해 이 독특한 직육면체의 대형 목조 선박은 탁월한 구조안정성, 복원안정성, 파랑안정성이 입증됐다. 당시 인간의 지식 수준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완벽한 선박공학적 비율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대전엑스포장에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 신우회에서 노아의 방주를 실제크기의 1/5로 제작해 실험연구를 진행했다. 노아의 방주 안전성 실험결과 방주는 43m 파고가 일어도 뒤집히지 않아 미국 선박의 안전기준치보다 13배나 높은 복원성을 보였다. 관련 동영상 캡쳐.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방주 모형실험을 통해 이 독특한 직육면체의 대형 목조 선박은 탁월한 구조안정성, 복원안정성, 파랑안정성이 입증됐다. 당시 인간의 지식 수준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완벽한 선박공학적 비율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대전엑스포장에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 신우회에서 노아의 방주를 실제크기의 1/5로 제작해 실험연구를 진행했다. 노아의 방주 안전성 실험결과 방주는 43m 파고가 일어도 뒤집히지 않아 미국 선박의 안전기준치보다 13배나 높은 복원성을 보였다. 관련 동영상 캡쳐.

아라랏산에서 발견된 노아의 방주

현재 아라라트산으로 표기되는 아라랏(Ararat)산은 서쪽으로 터키, 남쪽으로 이란, 동쪽으로 아르메니아, 서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산 정상의 30% 정도는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해발 5137m의 대아라랏(Greater Ararat)산과 해발 3896m의 소아라랏(Lesser Ararat)산으로 구분되며, 산세가 높고 험준한 지형의 휴화산이다. 아라랏산을 터키 사람들은 아리다이(방주의 산)로, 페르시아 사람들은 코이누(노아의 산)로 부른다.

1883년 터키 군부에서 파견된 탐험대, 1916년 러시아 군부에서 파견한 150명에 이르는 대탐험대가 아라랏산에서 거대한 배의 유해를 발견했다. 프랑스의 탐험가 페르난드 나바라는 18년 동안 노아의 홍수와 방주에 관한 면밀한 문헌 조사 끝에 그 진실성을 인정하고 1952년부터 3년간에 걸쳐 현지 탐사를 감행했다. 그는 1955년 아라랏산 4100m 지점에서 거대한 배의 현(舷) 부분을 발굴, 1m50㎝로 잘라서 짊어지고 돌아왔다. 목재를 분석한 결과 약 5000년 전의 잣나무로 확인됐으며 역청이 발린 흔적도 발견됐다. 성경과 정확히 내용이 일치했다.

2009년 10월 홍콩의 노아방주선교회(NAMI)탐사팀은 터키 동쪽 해발 약 4000m의 아라랏산에서 노아방주 일부로 추정되는 30m의 대형 목조구조물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당시 탐사팀은 이 목재 구조물이 눈과 화산재 아래에 묻혀 있었는데, 이란에서 실시된 탄소 측정 결과 이 물체가 약 48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상황을 녹화한 영상도 공개했다. 2010년 4월 26일 중국과 터키 국적의 복음사역자팀도 터키 동부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실제 내부에 들어가 방주 내부를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두드려서 나는 소리가 모두 나무였다. 칸칸이 만들어진 동물 우리도 발견됐다. 나무의 연대 측정결과 약 4800년 전으로 밝혀졌다.

현재 여러 과학적 과정을 통해 노아의 방주는 선박공학자들이 놀랄 만큼 완벽하게 만들어진 초대형 목재선박으로 성경 기록대로 아라랏산 만년설 속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교훈

노아의 홍수는 창조주가 선민을 처음 심판한 사건이다. 아담으로 인해 죄가 들어온 이후 선민은 점점 더 타락했다. 창조주는 선민의 회복을 기다렸지만 한 번 죄로 물든 그들은 다시 죄 이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노아는 창조주가 선지자로 택한 인물이었다. 그는 심판자인 동시에 방주에 오르는 자를 살릴 수 있는 당대의 구원자였다. 그러나 방주의 문이 닫히는 날까지 타락한 선민은 노아가 선포한 ‘홍수 심판’을 믿지 않고, 하나님은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민의식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산에 거대한 방주를 지은 노아를 멸시했다. 결론은 노아가 옳았고, 노아를 무시한 타락한 선민들은 모두 숨졌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이후 다시는 인생을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초림 예수는 마지막 때가 노아 때와 같고 롯 때와 같다고 선포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예수가 다시 와서 심판 때임을 알려도 노아 때처럼 듣지 않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성경은 장차 될 일을 기록한 예언서이자 신의 약속을 기록한 글이다. 그리고 창조주가 한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적이 없다. 단지 타락한 인간이 그 약속이 이뤄져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장 42~44절)

[용어정의]

노아의 홍수

창조주가 타락한 아담의 후손을 대홍수로 심판한 사건이다. 창세기 6~8장에 기록돼 있다. 약 4400년 전(BC 2400년 경) 일어났다. 아담의 9대손 노아를 택하신 하나님은 대홍수를 예언하시고 방주를 짓게 하셨다. 대홍수는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2월 17일부터 시작돼 40주야를 비가 내렸다. 같은해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고 기록돼있다.

노아의 방주

대홍수에 대비해 하나님이 노아에게 만들라고 하신 직육면체의 대형목재선박이다. 대략 135m(길이)x22.5m(너비)x13.5m(높이)로 10(길이):1.6(너비):1(높이)의 비율로 만들어졌다. 선박공학자들에 따르면 이 비율은 ‘가장 안전성이 뛰어난 선박 비율’로 최근에야 결론난 것이다. 노아의 방주 실험에서도 확인된 놀라운 안전성은 노아의 홍수가 창조주가 행한 실제 사건이었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