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유승우(1940 ~ )

 

파도에게 물었습니다

왜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서느냐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파도의 대답입니다.

 

[시평]

파도는 왜 끊임없이 밀려갔다가는 밀려오는가. 그리고는 허연 물거품을 남겨두고는 물러가고, 이내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다시 밀려와서는 해안에 아픈 머리를 부딪치곤 하는가, 파도를 바라보며 시인은 우문(愚問)을 한다, “파도야! 왜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서느냐?”고. “왜 이렇게 고단하고 힘들게 해안이며, 해안의 바위에 온몸을 부딪치느냐?”고.

파도는 시인의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을 한다.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무너졌다가는 이내 일어서므로 비로소 파도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 모든 존재는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확인시켜주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주기 위해 무한히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이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해낸다. 그래야만이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몰려왔다가는 밀려가고, 이내 다시 밀려와서는 온몸을 세상에 부딪쳐야 하는 파도를 바라보며,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온 자신의 지난 삶을 생각한다. 우리 모두 저 파도와 같이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온통 허옇게 부서지며. 세상의 바닥으로 허옇게 온몸 널브러트리지 않았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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