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제공: 이수C&E)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제공: 이수C&E)

여타의 시간여행 소재 영화와는 달라

현실적이면서 아날로그적인 ‘시간여행’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찬란한 순간’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참 느렸었지 늘 지루했지 시간아 흘러라 흘러 그땐 그랬지~”

카니발 ‘그땐 그랬지’의 가사를 보면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한다. 어쩌면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되는 것은 찬란했던 과거였을지도 모른다. 20일 개봉한 영화 ‘카페 벨에포크(감독 니콜라스 베도스)’는 과거의 한 순간을 아날로그적이지만 아주 현실감 있게 데려간다.

종이보다는 아이패드에 기록하고 옆 사람과 대화하기보다는 기계와 더 소통하는 현대. 이런 현실 속에 빅토르(다니엘 오떼유)와 마리안(화니 아르당)은 40년을 함께한 부부다. 함께 40년을 보냈지만 두 사람의 현재는 다르다. 빅토르는 신문에서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리며 한때 잘나갔던 삽화가였지만 지금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채 정리되지 않은 수염만 덥수룩하게 기르며 살고 있다. 반면 그의 아내 마리안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발 맞춰 살면서 아들과 함께 사업을 구상하고 기업의 CEO로 세련되게 살면서 과거에 박제된 것 마냥 살고 있는 남편 빅토르가 못마땅하다.

빅토르는 마리안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리안은 현대에 발맞춰 가지 못하는 빅토르가 말할 때마다 딴지를 건다. 옆에 아들이 보고 있음에도. 이러한 모습을 보던 아들 막심(미카엘 꼬엔)은 빅토르에게 친구 앙투안(기욤 까네)이 운영을 하고 있는 ‘시간여행 초대장’을 준다. 앙투안이 운영하는 ‘시간여행 사업’은 고객이 가고 싶은 과거를 설명하면 그게 어느 시대가 됐든 만들어준다. 중세 어느 시대의 귀족이 되고 싶으면 벽에 걸린 그림, 세워져 있는 조각상 하나하나 시대에 맞춰 세팅하면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그러면 고객은 현재의 모습을 벗은 채 중세의 ‘귀족’이 되거나 ‘헤밍웨이’가 되기도 하며 원한다면 ‘히틀러’까지도 될 수 있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제공: 이수C&E)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제공: 이수C&E)

빅토르는 아들이 준 초대장을 가지고 앙투안의 회사로 향한다. 그는 과거의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바로 “1974년 5월 16일”이라고 말한다. 바로 아내인 마리안을 카페 ‘벨에포크’에서 처음 만난 날이다. 그때 시절을 그려놓은 그림을 토대로 만들어진 세트장에 들어선 빅토르는 아내 역의 배우 마고(도리아 틸리에)를 만나 1974년 5월 16일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분명 세트장이었지만 빅토르는 마고를 과거의 마리안이라고 생각하며 젖어든다. 처음에는 ‘시간여행’에 부정적이던 그였지만 어느 순간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가면서 빠져들기 시작한다.

‘시간여행’은 여태껏 많이 써왔던 소재였다. 하지만 여타의 영화들은 과학적인 ‘기술’로 과거로 돌아가거나 설명할 수 없는 ‘초능력’으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에 반해 ‘카페 벨에포크’는 아주 아날로그적이면서 현실적인 방법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판타지로 어우러진 ‘어바웃타임’이나 ‘미드나인 인 파리’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더 결을 함께하는 듯하다.

영화는 빅토르와 마리안, 앙투안과 마고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보인다. 막심을 통해 빅토르에게 ‘시간여행’을 선물한 앙투안은 과거 빅토르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며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완벽하게 세트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그였지만 연인 마고와는 잦은 다툼과 재결합을 한다. 그리고 시간여행을 떠난 빅토르가 마고에게서 과거 마리안의 향수를 느끼자 질투하는 다소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제공: 이수C&E)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제공: 이수C&E)

빅토르는 ‘시간여행’을 떠나기 위해 질투했던 아들과 함께 일하고 종이가 아닌 패드에 그림을 그리면서 과거에 갇혀있던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반면 빅토르를 고리타분하게 여겼던 마리안은 외도의 상대 프랑소아(드니 포달리데스)를 아들에게 밝히면서 당당하게 만나지만 점점 무너져가는 자신과 마주한다.

영화 제목이자 카페 이름인 ‘벨에포크(La belle epoque)’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라는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파리는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데 그때를 ‘벨에포크’라고 칭한다. 또 인생의 가장 아름답던 순간을 뜻하기도 한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아름답던 그 순간을 보여주면서 현실과 마주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서로에게 권태를 느꼈던 빅토르와 마리안은 과거 자신들을 다시 마주하면서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앙투안과 마고는 빅토르가 변하는 모습을 통해 잦은 다툼으로 깨져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한다. 결국 우리는 권태로운 매일매일을 살아가며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그것을 양분삼아 미래로 살아가야하는 것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지금의 삶이 팍팍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그러하다면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향수를 느끼며 앞으로 자신이 그려갈 미래를 생각하길 바란다. “나한테 전화 줘. 최대한 빨리. 인생은 짧아. 알지?”라고 말하던 마리안의 대사처럼 우리의 인생은 과거에만 매이기엔 짧지만 찬란하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포스터(제공: 이수C&E)
영화 ‘카페 벨에포크’ 포스터(제공: 이수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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