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순진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장은 70년대 초 통기타 바람을 일으켰던 4월과 5월의 초창기 멤버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백순진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장
70년대 초 통기타 듀엣 前 4월과 5월을 만나다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통기타의 마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악기에 손을 댄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타를) 제 곁에서 멀리둔 적이 없습니다.”

백순진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장은 기타 예찬론자다. 기타도 통기타만 고집한다. 일렉트로닉 기타와 달리 통기타는 나무로 만들어져 자연친화적이며 어느 곳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꼽은 백 회장. 그래서 그는 ‘4월과 5월’이라는 듀엣으로 무대에 올랐단다.

4월과 5월 요즘 세대에겐 생소할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정확히 40년 전,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기타와 청바지를 유행시켰던 주인공들이다. 물론 이 그룹뿐만 아니라 한대수 김도향 윤항기 등 당시 젊은 가수들이 통기타 음악을 고수했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는 60~70년대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이끌어 냈죠. 거리 곳곳에서 팝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전 이러한 상황이 아이러니하더군요. 우리가 외국 노래만 부르는 상황이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맞는 노래를 작곡하고자 했습니다.”

백 회장이 처음 작곡했을 때 노래를 불러줄 가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즈음 가수 겸 작곡가인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가 나타났다. 본의 아니게 그는 1세대 싱어송라이터가 됐다.

“제 음색은 가수로서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새파란 젊은이가 작곡한 노래를 누가 부르겠습니까. 그래서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거죠. 뜻밖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하나같이 서정적이며 밝다. 한마디로 싱그러운 청춘이다. 그는 젊은이들을 위해 의식적으로 감상적이며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를 붙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당시 가요계의 흐름은 ‘울고 짜는’ 노래가 주를 이뤘다. 노래뿐만 아니라 영화도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다. 6.25전쟁을 막 넘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정권을 겪으면서 시대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예술계는 신파적인 소재를 자주 사용했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아무 이유 없이 울적한 노래가 주를 이뤘습니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많았지요. 저는 꿈을 이뤄야 할 청년들이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듣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의식적으로 피했습니다.”

새로운 음악이었다. 통기타 음악도 가사도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통기타 열풍도 7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이어져 나갔다. 유행하는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은 통기타를 메고 삼삼오오 모여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신(新)문화였다. 덩달아 4월과 5월의 인기도 높아졌다.

4월과 5월이 지방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대천바닷가에 내려갔을 무렵이었다. 해변에는 텐트를 친 젊은이들 수두룩했다. 통기타를 치는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는데 이들은 노래를 즐거이 부르고 있었다. 4월과 5월의 멤버는 귀에 익은 음이 들려 자세히 들었다. 선율은 바로 자신들의 노래 ‘화(和)’였던 것이었다.

“대천바닷가에 젊은이들이 수두룩했는데 바닷가 끝에서 끝까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화’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4월과 5월의 노래가 바닷가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기분이 묘하던 걸요.”

백 회장이 저작한 노래들은 시적이어서 후배들에게 종종 다시 불려진다. 특히 ‘장미’는 리메이크가 종종 되는데 가수 신해철 씨가 재즈로 바꿔 불러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했다.

2011년은 4월과 5월이 데뷔한 지 꼬박 40주년이 되는 해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찾는 팬들이 고마워 오는 9~10월경에 작은 콘서트를 마련할 계획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4월과 5월을 찾는 사람들은 2000여 명 가량이 된다. 꼭 회원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콘서트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연습을 많이 하고 싶지만 현재 김태풍 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각자의 할 일이 있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도 팬 여러분들도 옛 향수에 푹 젖어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주를 맡은 분들도 40년 전 들개팀이 연주할 것입니다.”

그는 음악인으로서 중대한 꿈이 있다. 근 30여 년 동안 구상해 온 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곡에 대해 함구한 그는 음악의 길로 계속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음악만 하고 싶죠. 사업은 항상 경쟁 관계에서 어느 한 쪽이 잘되면 다른 쪽은 지죠. 하지만 음악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백 회장은 현재 여행사인 ㈜샤프트레블의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두 동생과 함께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동생 덕을 종종 본단다. 그는 “동생들과 함께 경영하기 때문에 음악활동이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회장은 통기타가 각 가정마다 한 대씩 보급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유인 즉, 휴대하기 편해 음악을 즐기는 한민족에게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코드를 잡는 부분은 외워야 돼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사람은 아날로그 소리를 좇게 돼 있어요. 그동안 디지털 기계음을 듣다가 통기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쎄시봉과 통기타가 다시 유행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통기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앞으로 더욱 많이 보겠지요.”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