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워싱턴 링컨 기념관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폭스뉴스)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워싱턴 링컨 기념관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폭스뉴스)

트럼프 또 방위비 증액 기정사실화

미국 당국자 “너무 많이 내렸다” 강경

정부 “방위비 협상, 한미 모두에게 공평해야”

전문가 “트럼프 발언, 대선용… 조속 해결 필요”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한미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둘러싼 미국 측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최종 제안’이라며 약 50% 인상된 13억 달러 수준의 분담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모두에 공평해야 한다’ ‘13% 인상안이 가능한 최고 수준’이라며 선을 긋는 등 우리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도 연일 고삐를 죄는 형국이라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방위비 협상을 두고 양측 간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한미관계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터무니없는 방위비 증액 요구라는 게 알려지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과정에서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협상으로 가야 된다’는 견해도 있어 주목된다.

◆한미, 방위비 증액 놓고 팽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그레그 애벗 택사스 주지사와 접견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문답을 하던 도중 “나는 그저 여러분에게 매우 부유한 나라들을 우리가 공짜로, 공짜로, 또는 거의 돈을 받지 못한 채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한국을 콕 찝어 “한국은 우리에게 상당한 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우리는 매우 많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9일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이 많은 돈을 내기로 했다“고 말한 데 이어 또다시 증액 합의를 거론하면서 압박에 나설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같은 날 미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13억 달러’ 제안과 관련해 “너무 많이 내렸다”면서 “그런데 한국 정부는 무엇을 했나. 아무것도 안 했다”는 발언까지 나오는 등 한층 강경한 기세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행정부 인사들의 발언에서 이미 감지됐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이 더 기여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견해”라면서 “미국은 수용 가능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최근 몇 주 동안 상당한 유연성을 보여왔다”고 강조했고, 지난 5일과 7일(현지시간)에는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까지 나서 방위비 협상 문제를 언급하고 “한국 정부가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지난 3월 말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이 무급휴직에 들어가기 직전에 마련된 한미 실무진의 13~14% 인상 합의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된 이후 전방위적으로 공세를 퍼붓는 양상이다.

하지만 우리 측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인 만큼 당장 협상 진전이 있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13% 인상안을 미국이 거부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 금액이 우리로서는 가능한 최고 수준의 액수”라며 못을 박았고, 전날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협상 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공평해야 수용 가능하다”고 거들었다.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 역시 “우리도 협상 과정에서 유연성을 발휘했다”고 응수했다.

한미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을 위한 5차 회의가 18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종료되면서 연내 타결이 불발됐다. 협정 공백 상태에서 내년 초에 협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진은 워싱턴D.C.에서 열린 4차 회의에 앞서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 대사와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제공: 외교부) 2019.12.18
한미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을 위한 5차 회의가 18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종료되면서 연내 타결이 불발됐다. 협정 공백 상태에서 내년 초에 협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진은 워싱턴D.C.에서 열린 4차 회의에 앞서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 대사와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제공: 외교부) 2019.12.18

◆방위비 압박, 트럼프 대선 홍보용?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압박을 강화하고 나선 배경과 관련해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성과물로 제시하는 등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범철 박사는 8일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관련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에 대한 압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대선용으로 홍보하겠다는 생각이 훨씬 크다고 본다”고 답했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도 이에 동의하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 여론과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자신의 치적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측이 자신들의 요구 액수를 공개한 건, 한국 내 여론이 생각하는 금액 상한선을 다시 가늠해보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 교수는 “원래 협상이라는 것은 그 과정에서 본론을 잘 얘기 안한다. 협상 막판에서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데 이미 그 단계는 지났다”면서 “협상 과정에서 논의된 구체화된 계수나 금액 등을 언론이나 외부에 흘리는 단계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미국은 그런 단계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살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방위비 협상을 둘러싼 한미 간 갈등이 장기화하면 한미관계 전반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최근 지원 대책이 마련되고는 있지만, 4000여명에 이르는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이 길어지는 것도 한미 정부 모두에게 부담이다.

신 박사는 “한미가 주장하는 바를 보면 2억 달러의 갭(차이)이 있는데 우리정부로서는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에서 덜 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갈등을 장기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너무 고집을 피우다 파국이 길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방위비 각각의 항목을 면밀하게 살펴서 일정한 수준에서 합의하는 게 옳은 수순이라는 게 신 박사의 설명이다.

최 교수도 “미국과의 줄다리기는 바람직하지만, 힘이 약하다면 결국엔 좀 더 유연한 전략적 접근도 강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미가 미 대선까지 이런 구도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선을 앞두고 방위비 협상에서 양보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고 정부 측도 대폭적인 인상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협상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면, 양측 공히 미국 대선이 지난 뒤 새로운 국면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두 교수는 이와 관련해 “북한은 핵이 있는 상황이고 한미 동맹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그때까지 가려고 하기 보다는 조속한 해결이 돼야한다”고 조언했다.

‘방위비 협상, 주한미군 카드 나올까?’(동두천=연합뉴스)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두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20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미군 전투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외신에 따르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과 관련해
‘방위비 협상, 주한미군 카드 나올까?’(동두천=연합뉴스)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두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20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미군 전투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외신에 따르면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과 관련해 "추측하지 않겠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으면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방위비 협상 테이블에서 카드로 쓰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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