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한국은 과거 6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 먹기가 어려웠다. 어머니는 자녀의 도시락에만 넣어줄 쌀을 조금 얹혀 놓고 밥을 지었다. 도시락을 싸고 남은 쌀밥은 아버지 몫이 된다. 겨울철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머니는 ‘이게 다 쌀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되뇄던 모습이 기억난다.

옛 기록을 보면 쌀밥을 ‘옥반(玉飯)’이라고 했다. 옥처럼 희고 빛나는 밥이란 뜻이다. 우리 풍속에는 귀한 손님이 오면 아끼고 아꼈던 쌀을 내어 밥을 지었다. ‘옥반진대(玉飯進待)’란 말은 쌀밥으로 귀한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하얀 쌀밥에 고깃국’은 북한 3대 김씨 일가가 주민들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였다. 시장마당이 서고 상거래가 활발해진 현 북한 사정은 과거와는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농촌 주민들에겐 쌀밥에 고깃국은 아직도 그림의 떡이 아닌가 싶다. 판소리 ‘박타령’에도 가난한 흥부 가족들의 꿈은 쌀밥에 육개장국이었다. 이십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제각각 밥 타령을 하는데.

-어머니, 나는 서리쌀밥에 육개장국 한 그릇만 먹었으면… 또 한 놈이 나앉으며, 어머니, 나는 호박떡 한 시루만 해주시오. 호박떡은 더워도 달고, 식어도 달고, 참 맛이 좋지… 엄니 난 암것도 말고 큰집에서 먹던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좋겠는디…(하략)-

‘백리부미(百里負米)’란 말이 있다. 쌀이라면 백리라도 지고 가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치사(致思)에 나오는 효자 이야기다. 제자 자로(子路)는 소문난 효자였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부모에 대한 자신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집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할 때 녹봉이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관리가 됩니다. 옛날 부모님에게 나쁜 음식만을 대접하여 백리 밖에서 직접 쌀을 져 왔습니다(百里負米).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초(楚)나라에서 관리가 되었을 때는 수레가 백 대나 되었고, 창고에는 쌀이 수 만석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수명은 마치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바라다보는 것처럼 순간일 뿐입니다.”

스승은 자로의 지극한 효를 칭찬했다. ‘자로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정성을 다해 섬기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한없이 그리워하는 구나.’

한국은 쌀 종주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1998년 청주시 청원군 소로리 유적지에서 출토됐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만 2000~1만 3000년 전 구석기시대의 것이었다. 그동안은 중국 후난성에서 나온 1만 1000여년 전 볍씨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았으나 이를 앞선 학술적 결과가 나온 것이다.

쌀밥이 그리웠던 한국은 지난 1970년 농촌진흥청 우수한 두뇌들의 노력으로 만든 것이 통일벼였다. 통일벼는 개발 당시 다른 품종들보다 30% 정도 생산성이 높은 품종이었다. 벼농사의 혁신을 이룩한 것이다.

그 후 쌀 품종도 많이 개선됐으며 매일 맛있는 옥반을 먹는 쌀 부자 나라가 됐다. 지금은 쌀 생산 과잉생산국이 돼 격세지감이 없지 않다. 도시락에 살짝 얹어가던 쌀밥 얘기는 옛날 전설이 된 것이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건조지역용 벼 품종인 ‘아세미’가 이제는 중동 사막지역에서 시험 재배에 성공,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UAE) 1890㎡의 면적에 파종한 것이 다음 달 수확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세계 척박한 곳곳에 쌀 한류를 심어 가꿀 한국이 된 것이어서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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