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 아래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군 당국이 마스크 제조 기업체 일손이 부족하다고 장병들을 사사로이 파견해 말썽이 일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 요청한다고 해도 군이 이를 용인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었다. 지금 이 시대가 권력층들이 군사들을 사사로이 이용하던 고려 무반시대인가.

이 일은 목을 열 개 쯤 내 놓고 감행해야 하는 사안인데 이 정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각하는 모양이다. 군을 움직이는 사령탑은 누구인가. 설령 요구를 거역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부탁이 있었다고 해도 군은 단호히 거절해야 했다. 언론이 부당성을 계속 물고 늘어져도 책임 있는 당국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더니 이제는 콩가루 군대요, ‘당나라 군대’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얼마 전에는 공군 조종사들이 비상대기 중에 술파티를 했다고 해서 비난을 샀다. 왜 군기가 빠지면 ‘당나라 군대’라고 조소 받는지 역사를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수, 당 시대 군대들은 강제로 동원된 장정들이다. 그래서 사명감이 없었다. 백만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던 수양제는 터무니없는 일로 군사력을 모두 잃었다. 당시에는 보병 1인이 식량을 배급받아 등에 짊어지고 행군했는데 이것이 무겁다고 길가에 버리고 홀가분하게 진군했다.

고구려 땅에 진입한 수나라 군대는 성에서 식량을 모두 가지고 산으로 숨은 청야전술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수나라 군대는 청천강에서 전멸하다시피하고 나라마저 망했다. 이 같은 내용은 중국의 사서에도 나온다.

그 뒤를 이은 당나라 군대도 군기는 마찬가지였다. 당태종이 치욕을 씻는다고 수십만명 군대를 동원했지만 안시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치욕의 패전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여러 제후 국가들로부터 강제 동원된 연합군은 군기가 바닥이었다. 돌궐이나 말갈 군대의 경우는 야만적이어서 신라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됐다.

신라 삼국 통일 후 한반도에 진주했던 당나라 군대들은 더 콩가루 군대였다. 아무리 군대의 수효가 많아도 군기가 개판이면 전쟁에서 무너지게 된다. 신라는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대를 모두 몰아내는 과업을 성공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신라가 외세를 몰아내는데 기여한 것은 사병(私兵)의 힘이었다. 신라는 각 주(州) 성(城)별로 태수나 도독들의 사병을 거느렸다. 김유신 장군이 상주행관총관으로 있을 당시 사병의 숫자는 3천명이었다. 이 병사들은 김 장군과 함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신라통일의 대업을 완수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고려는 사병제로 무너졌다. 이방원은 자신이 거느린 사병들의 힘으로 조선을 개국했지만 왕이 된 후에는 후환이 두려워 이 제도를 혁파했다. 이후 사병을 두거나 임의로 군사들을 움직이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했다.

중국 명나라 말기 장군 척계광(戚繼光)은 유명한 장수였다. 그는 병서를 많이 썼는데 기효신서(紀效新書)라는 저서에서 장수가 사사로이 병력을 쓰는 것을 금지 하는 내용이 나온다.

‘병사들은 항상 같은 장수의 지휘를 받지 않고, 장수는 항상 같은 사병을 지휘 않는다(兵無常將 將無常兵)’

장수와 군사들의 유착관계마저 금기시한 것이다. 병력을 사사로이 쓰지 못하게 한 것은 고금의 군법이다. 현대에도 천재지변에는 복구를 위해 동원할 수 있지만 국가적인 일에만 국한 된다. 아무리 코로나 19에 관련된 봉사라고 하지만 군 병력을 사기업 일에 동원한 것은 콩가루 군대나 할 일이다. 군의 지원을 받은 특권업체의 정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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