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미스터 트롯 열기 속에 우승을 차지한 젊은 가수가 엄마에게 올해까지 1억원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은 엄마 손에 이끌려 자랐다. 엄마는 개가하지 않고 미용기술을 배워 아들을 양육하며 힘겹게 살았다.

착한 아들은 비뚤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들이 대학에 진학해 음악을 전공토록 했다. 이 가수는 초선부터 엄마를 생각하며 부른 ‘바램’이란 가요로 전국의 여심을 장악했다.

진의 영광에 뽑히면서 아들은 또 울었다. 1천만 시청자들을 또 울린 감동이었다. 옆에 있던 다른 수상자들도 눈물을 훔쳤다. 아들은 ‘일찍 떠나가신 아빠에게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를 지켜본 엄마가 오열하며 ‘울지마’라고 다독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않은 드라마와 같은 감동의 장면이 연출 된 것이다.

대중가요 트롯이 이번처럼 국민들을 웃기고 즐겁게 한 사례가 없다. 지난해 미스트롯에도 열광했지만 35% 이상의 시청률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왜 이처럼 호응을 받은 것일까.

국민들의 인기를 모은 것은 노래도 잘한 것이었지만 참가한 가수들의 인간 승리적 스토리 때문이다. 고아출신이며 문제아로 자란 가수는 성악재능으로 이탈리아까지 유학을 다녀온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훌륭한 성악가로 키운 이는 바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가수는 담임선생님을 늘 부모처럼 대하고 있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은사를 찾은 그는 은혜에 감사의 눈물을 쏟았으며 선생님도 같이 울었다.

고통과 좌절의 눈물이 아니었다. 대견스럽게 성공한 자식을 대하듯 기쁨의 눈물이었다. 이들의 삶이 이미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불행과 좌절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보여준 것이었다.

결승에 오른 7명의 출연자 모두 어려운 환경 속에서 트롯을 사랑하고 꿋꿋하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고 시장이고, 골목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찾아가 보통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며 산 예술가들이었다. 개업 집, 경로당, 지방 축제 무대에서 얼마 되지 않는 출연료를 받고 노래를 하며 살아온 젊은이들이었다.

무영가수는 힘든 직업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고 아름다웠다. 악의 없는 얼굴과 착하고 순박한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당락의 희비 속에서도 승복하고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코로나19의 고통스런 삶에도 불구하고 이런 얼굴을 보는 시청자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인생의 애환을 담은 구수한 트롯은 이제 1백여년의 역사를 지닌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후반부터 국민들의 삶과 기쁨 슬픔을 같이 해 왔다. 트롯은 1970년대 한창 국민적 인기를 끌다 TV가 외면하면서부터 침체국면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실지로는 국민의 삶 저변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음악이 바로 트롯이었음이 증명 된 셈이다. 전국 각지 3만 5천여개소의 노래방에서 많이 불리어지는 노래는 바로 트롯이다. 최근엔 트롯 열풍으로 전설적인 원로 가수들의 리사이틀은 언제고 매진이다.

세계 1위 인기를 구가하는 방탄소년단이 얼마 전 미국공연에서 아리랑을 피날레로 공연하여 세계를 감동 시켰다. 아리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된 곡이다. 왜 아리랑에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한국의 음악은 이렇듯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가락이다. 이제 한국 트롯이 세계 시장에서 눈부신 한류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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