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제철 풍산 화동양행 대표

◆호조태환권(1893)

고종 29년(1892) 인천전환국이 설치되고 신화폐가 발행됨에 따라 지폐를 발행하여 새로 제조되는 신화폐 은화 또는 동화와 구화폐인 엽전(상평통보)과의 교환, 정리 업무를 맡아볼 태환서가 서울에 설치되었다. 여기서 50량, 20량, 10량, 5량 등 4종의 호조태환권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태환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로 근대식 인쇄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태환지폐를 구화폐와 교환 발행함으로써 당시 혼란한 화폐체계를 정비한 다음, 신화폐의 제조량이 증가되면 다시 신화폐와 교환할 계획이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소각되고 말았다.

호조태환권 (제공: 풍산화동양행)
호조태환권 (제공: 풍산화동양행)

◆제일은행권(1902~1909)

광무 6년(1902) 일본의 다이이찌 은행은 대한제국 승인 없이 일본 대장성의 승인만으로 10圓 , 5圓, 1圓 등의 지폐를 발행하였다. 일본 제일은행권은 1902년과 1904년에 제조된 구권과 새로운 도안으로 1908년 이후에 발행된 신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제일은행 총재 시부사와 에이이찌가 주된 도안 소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일본 화폐와의 태환 문안이 앞면에 일본어로 뒷면에 한글과 영어로 기재되어 있으며, 대한제국의 영문 국명이 ‘Corea’로 표기되었다. 신권을 보면 1908년에 발행된 1원권에는 수원화성의 화홍문, 이듬해 발행된 10원권에는 창덕궁의 주합루, 5원권에는 광화문이 주된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들 일본 제일은행권은 요판인쇄(凹版印刷) 되었는데, 구권은 대장성 인쇄국에서 신권은 내각인쇄국에서 제조되었다. 일본 제일은행권에 사용된 위조방지 장치로는 구권의 경우 권종 모두 ‘제일은행(第一銀行)’문자가 숨은 글씨로 들어 있고, 신권의 경우에는 10원군에 태극장과 벚꽃, 5원권에 국화당초와 자두꽃, 1원권에 태극장과 자두꽃이 숨은 그림으로 들어 있다.

한편 일본 제일은행은 1904년부터 10전, 20전, 50전짜리 소액권을 별도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소액권에는 봉황과 용이 주된 소재로 사용되었으며 모조지에 철판인쇄(凸版印刷) 되었다.

구권(1원) (제공: 풍산화동양행)
구권(1원) (제공: 풍산화동양행)

◆구 한국은행권

융희 3년(1909년) 한·일 정부 간에 제일은행권의 권리·의무 계승에 관한 조서를 교환하고 1909년 11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중앙은행인 구 한국은행이 발족되었으나 미처 은행권 현물을 준비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종래 법화로 취급되었던 일본 제일은행권을 구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구 한국은행권 제조를 일본의 내각인쇄국에 발주하였다. 구 한국은행권은 일제의 국권 침탈이 완료된 후인 1910년 1원권이 먼저 발행되었고 이듬해 5원권과 10원권이 발행되었다.

한국은행권 (제공: 풍산화동양행)
한국은행권 (제공: 풍산화동양행)

구 한국은행권은 일본 제일은행권의 원판을 일부 수정하여 사용하였는데 명칭, 은행 휘장 등은 약간 변경이 가해졌다.

1) 은행권의 명칭이 ‘한국은행권’으로 바뀌고 은행 휘장이 자두꽃(李花)으로 변경되었다.

2) 앞면의 화폐 단위 한자 표시를 ‘圓’에서 ‘圜’으로 바뀌었고 자우에 배치되었던 기번호가 대각선으로 바뀌었다.

3) 앞면에 표시되었던 제조년도(일본연호)와 제조처 표시는 삭제되고 윗면에 있던 우리말 태환 문구가 앞면에 배치되고 일본의 태환문구는 뒷면에 배치되었다.

4) 뒷면의 두취인 대신에 앞면에 총재인이 들어갔으며, 뒷면의 지배인인은 서무국장인으로 대체되었다.

5) 오른쪽의 액면 표시 영문자를 한자로 바꾸었으며, 영문 교환 문구에는 ‘IN GOLD'의 글자가 새로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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