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필자는 최근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공부하면서 매우 재미있는 두인(頭印)을 한 작품에서 찾았다. 추사가 만년에 쓴 ‘무량수(無量壽)’란 대자(大字) 현판 오른쪽 상단에 찍혀 있는 바로 도장이었다. 작은 호리병 같은 모양인데 그 안에 매우 고졸한 전서(篆書)로 쓰여 있는 글자는 바로 ‘수구(守口)’였다.

수구란 ‘입을 굳게 지킨다’는 뜻인데 무량수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글은 바로 무량수경에 나오는 구절로 불자들의 수행과정 중 하나다. 그래서 추사는 무량수를 쓰면서 걸맞은 두인을 인각해 찍었다.

‘무량수’ 현판은 서울 종로 운현궁 대원군이 기거하던 사랑채에도 걸려 있다. 예산 추사고택에도 이 글씨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글을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자를 특별히 많이 써준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끝없는 수복(壽福)을 누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입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인가. 추사는 젊은 시절부터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당대 왕실 외척인 안동 김씨 세도가의 부정과 부패를 보고는 참지 못했다. 추상같은 비판으로 썩은 자들을 규탄했다. 추사가 7년 3개월간 제주도에 귀양을 간 것도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제주도로 귀양을 간 추사는 그 곳에서 부인 예안 이씨의 부고를 받고도 상경하지 못했다. 제주에서 돌아 온 추사는 불행하게 살았던 과거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생겼다. 늙은 나이에 가난과 병고는 추사에게 큰 고통이었다.

추사는 만년에 유마경(維摩經)과 무량수경을 자주 읽었다. 불행한 인생을 되돌아보며 마음의 안정을 꾀하려 한 것인가. 사대부들, 특히 제자관계였던 대원군에게도 평소 존대하면서 무량수를 써주어 벽에 걸도록 했다. ‘입을 조심하는 것이 수복(壽福)을 이루는 첩경’이라고.

입은 화복(禍福)의 근원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의 오대(五代) 때 재상 풍도(馮道·882∼954)는 ‘설시(舌詩)’라는 시를 지었다. (全唐書 舌時篇)

‘입은 화의 큰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편안 하리라(閉口深藏說 安身處處于)‘

풍도는 당나라가 망하고 오대십국시대가 열렸지만 뛰어난 처세술로 다섯 왕조의 재상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후진(後晉) 물론 요(契丹). 후한(後漢) 후주(後周)에서도 기용, 치자들의 총애를 받았으며 늙도록 부귀를 누렸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고위 당·정·청 협의회 브리핑에서 말실수를 해 사퇴했다. “대구와 경북을 ‘최대한의 봉쇄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금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대구시민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말이었다. 해당 장관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우리 국민이 더 문제라고 했다. 확진자가 1천명을 돌파한 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쫑구어 짜요! 우한 짜요!(中國 加油 武漢 加油. 중국 힘내라, 우한 힘내라)’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웃음거리가 됐다.

논객 유시민씨는 특정 종단을 지칭 ‘국가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피해를 입혔다.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주객전도의 무책임한 말을 했다. 유씨의 흥분한 말투에는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대구에 대한 국민적 인도지원을 몸소 실천하거나 호소하는 대신 여당 중진들은 특정 종단의 책임이 아니라고 한 야당대표를 억지로 공격하는 말장난을 자행했다. 과연 그들은 지금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

공자는 ‘말 한 마디 잘못으로 평생 쌓은 덕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무심코 뱉은 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말이 화(禍)의 근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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