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예정론’을 주장했던 칼빈은 당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국을 장악, 막강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가톨릭을 능가하는 잔인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자행했다. 그는 자신이 정한 교리에 동조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아 사형시켰다. 사진은 마녀로 판명된 여인을 화형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출처: 위키백과)
‘절대예정론’을 주장했던 칼빈은 당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국을 장악, 막강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가톨릭을 능가하는 잔인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자행했다. 그는 자신이 정한 교리에 동조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아 사형시켰다. 사진은 마녀로 판명된 여인을 화형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 (출처: 위키백과)

가톨릭 이단규정‧박해 행태 반복한 장로교
시조 칼빈, 제네바서 잔혹한 ‘살인’ 까지
역사학계 일부 “칼빈, 최악의 기독교인”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혀 자르기도”
성경에 해석 가미해 ‘주석의 왕자’ 별칭
영국-미국 거쳐 한반도 안착한 장로교
분열에 분열 수천개 교단으로 찢어져

인류역사에서 탄생으로 한 시대의 기준이 된 예수로부터 시작된 기독교가 시작부터 그 부패함을 드러내며 걸어온 세월이 어느덧 2000년이 넘었다. 그간 기득권, 기성, 주류 등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 불려진 기독교는 돈‧권력‧성‧정치 등 세상적인 이권과 야합하며 본질을 잃고 분열하며 신뢰를 잃어갔다.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하늘에 닿았다. 어두운 시대 속, 새 시대 새 종교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절규에 대한 답이 무엇일까. 본지가 예수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역사를 통해 살펴봤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극심한 부패와 타락의 극단을 보여줬던 중세 유럽 당시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의 외침은 개신교(프로테스탄트) 탄생의 배경이 됐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은 장 칼뱅(J. Calvin, 1509∼1564)으로 인해 ‘기독교 강요’라는 이름으로 변질됐다. 이에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개신교도 얼마 가지 못해 똑같은 모습이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칼빈은 개신교 전파에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하지만 혹독한 정치와 이단 정죄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20여 년 동안 독재 권력을 휘둘렀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 예로 칼빈은 자신의 교리를 믿지 않던 수많은 사람을 ‘마녀’라는 죄목으로 화형 시켜 죽이는 등 잔혹한 고문과 처형을 일삼았다.

이러한 역사적 진실에도 유독 한국에서만 장로교가 득세하다 보니 장로교를 창시한 ‘칼빈’에 대해 한국 교계들은 ‘대단한 신학자’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칼빈에 대한 이러한 추앙 분위기는 세계적으로 장로교 인구가 매우 미미한 데에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예외적 현상이다.

◆‘최악의 기독교인’으로 평가받는 칼빈

루터보다 한 세대 정도 후배인 칼빈은 프랑스 노용(Noyon)에서 서기관이었던 제라르 칼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칼빈의 아버지는 그가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사제)가 되길 원했으나,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갈등 속에서 아들에게 법학으로 진로를 바꾸라고 권한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던 칼빈은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도덕 경찰이라는 종교국 특별기구의 수장으로 재임하게 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상반된다. 칼빈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최고의 거룩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반면 후대 기독교 역사철학자들은 그를 ‘최악의 기독교인’이라 평가하고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후자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는 성경에 없는 수많은 주석을 만들어 ‘주석의 왕자’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칼빈의 교리 중 가장 대표적인 ‘절대 예정론’을 보면 “영생이 예정된 자가 다시 영멸로 예정되거나 영멸로 예정된 자가 다시 영생으로 예정되는 변동은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구원 받을 사람도 벌 받을 자도 이미 정해져 있어, 선택된 자가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용서가 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칼빈은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만은 해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계시록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536년 27세의 나이에 ‘기독교강요’를 저술한 그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이단 척결 행태와 오버랩 되는 장로교회 통치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교리 반대자는 ‘이단규정’… 혀 자르기도

‘절대예정론’을 주장했던 칼빈은 당시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국을 장악, 막강한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가톨릭을 능가하는 잔인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자행했다. 그는 자신이 정한 교리에 동조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아 사형시켰다. 당시 인구 1만 6000명에 불과한 제네바에서 칼빈이 사형시킨 공식 사형 인원만 해도 58명이며 추방한 인원도 76명이다. 이 중 10명은 참수형이었고, 35명은 마녀사냥처럼 처참한 화형이었다. ‘유럽의 마녀사냥’의 저자 브라이언 레벡(Brian P. Levack)에 의하면 ‘칼빈사상이 지배하던 스위스에서는 8800명 이상의 여성이 마녀로 재판을 받고 5000명 이상이 처형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칼빈 추종자들이 저지른 ‘마녀사냥’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또 개신교 내에서 반발이 큰 카스텔로의 글과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에 따르면 칼빈은 자신을 비난한 사람을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혀를 잘렸고, 자녀에게 유아 세례 주기를 거부한 80세 노인과 그의 딸을 처형하기도 했다. 에스파냐의 의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세르베투스도 삼위일체론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학대를 받다가 화형을 당했다. 주일예배에 불참하거나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면 가차 없이 투옥됐다. 감옥에서는 심한 고문이 이뤄졌고, 투옥되는 주민들은 고문을 두려워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했다.

‘마녀’로 결론 나면 표적이 된 사람의 재산은 대부분 재판관이나 법원관리들의 몫이 됐다고 한다.

이후 유럽의 종교개혁기에 영국 성공회 신도 일부는 칼빈 신학을 받아들여 성공회에서 벗어나 청교도라는 세력을 형성했다. 청교도들은 가톨릭과 대립하자 신앙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하지만 현지 인디언을 대상으로 같은 행태는 반복됐다. 인디언들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청교도 목사들은 인디언을 사단의 아들이라고 말해 학살을 부추겼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준 인디언을 약탈하기도 했다. 이 청교도들이 바로 한반도에 장로교를 안착시킨 미국 북장로교의 시초다.

◆오늘날 장로교, 한반도 안착 이후 분열

칼빈의 제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러 제네바에 모여들었던 사람 중 존 녹스(J. Knox, 1513∼1572)는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을 전파, 오늘날 장로교파로 자리매김 시켰다. 칼빈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장로교는 16세기의 종교개혁 운동에 의해 생겨난 ‘칼빈주의’에 입각한 프로테스탄트의 한 파이며, 교회조직으로 장로(長老)제도를 채택해 장로정치를 하는 데서 이 호칭이 생겨났다. 이렇게 이동한 장로교는 유럽과 미국을 거쳐 조선 말기 이 땅 한반도에 발을 내딛게 됐다.

한국 장로교의 선교 역사는 1884년 9월 북미 장로교 의료선교사 알렌(H.N. Allen, 1858∼1932)이 인천에 도착한 날로부터 기산한다. 그의 뒤를 이어 1885년 4월에 언더우드(H.G. Underwood, 1859∼1916)가 다시 선교에 힘쓰기 시작했다. 의료 선교와 학교 교육에 기여하며 장로교는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장로교가 종교개혁기에 각국에 쉽게 정착했던 이유 중 하나는 사치스런 가톨릭에 반해 엄격한 통제를 보여주는 외형적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적 독단이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자행된 마녀사냥이 ‘돈벌이 수단’이었음이 드러나 오히려 쇠퇴의 원인이 됐다.

장로교 창시자인 칼빈 특유의 배타성을 장착한 교리로 인해 타종교에서는 보기 드문 이단논쟁이 거세다. 이 이단논쟁은 결국 장로교를 자멸로 이끌고 있으며, 실제로 교세가 가파르게 약화하고 있다. 이를 본바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신성남 집사는 교계 매체를 통해 “칼빈의 일부 사역은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이나 신념을 잘못 적용하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결과가 가능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면서 “문제는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유사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자기 신학에 너무 자만하지 말자”고 경고했다. 아울러 “이제는 우리도 정통과 밥통의 혼돈 속에서 개신교 부패와 몰락의 방조적 공범자가 돼 ‘중세적 바보’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녕 두려워해야 할 시대”라고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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