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오산 독산성
오산 독산성

임진전쟁과 독산성의 항전

독산성은 임진전쟁 당시 권율장군의 승전지로 유명하다. 권율은 어떤 인물인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으로 권보(權溥)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강화부사 권적(權勣)이며 아버지는 영의정 권철(權轍)이다. 선조 때 명신 백사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그는 본래 문관이었다. 선조 15(158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전적·감찰·예조좌랑·호조정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을 지냈다. 권율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광주목사(光州牧使)였다.

그는 남도근왕군(南道勤王軍)을 결성했을 때 중위장(中衛將)으로 참여했다. 남도근왕군은 8만 명에 달했다. 1592년 7월 11일(음력 6월 3일) 독산성(禿山城)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안산과 금천방면으로 나누어 북상한 뒤에 양천의 북포에서 임진강 북쪽의 관군과 협력해 한양 탈환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남도근왕군은 일본군에 패했다. 수원과 용인 방면으로 진격하던 근왕군은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광교산일대에서 패하여 큰 타격을 받았다. 권율은 다시 전라도로 귀환했다. 선조는 권율을 도절제사로 임명하여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일본군 제6번대의 방어를 명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권율은 용인전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독산성으로 들어가 진을 꾸렸다. 그리고 세력을 모아 한양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배후를 압박하고, 관북·관서 지방으로 향하는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려 했다.

그러자 일본군 제8번대의 수장인 우키타 히데이(宇喜多秀家)에는 2만의 병력을 동원해 독산성을 에워싸고 공격을 해왔다. 권율군의 결사적인 저항으로 일본군은 성을 단기간에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때 톡톡히 한 몫 한 것은 바로 치성(雉城)이다. 사방에서 공격하여 올라오는 적들을 측면이나 배후에서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것이 치성의 강점이다.

이때 명나라의 원군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 또 의병군 후원부대가 오자 일본군은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권율은 퇴각하는 일본군의 후미를 공격해 많은 적군들의 목을 베었다.

이 독산성 전투의 승리로 전세는 완전히 뒤집혀졌다. 즉 조선군은 경기 지역에서 일본군 세력을 위축시키면서 한양 왕도 탈환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산성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세마대(洗馬臺)’에 얽힌 이야기다. 산성 안에는 우물이 없어서 마실 물이 모자랐는데 권율은 이를 감추기 위해 흰 쌀알로 말을 씻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성을 포위하고 있던 일본군은 이 모습을 보고는 물이 풍족하다고 여겨 물러났다는 것이다.

세마사(洗馬寺)는 일명 보적사(寶積寺)라고 불리는데 세마대 바로 아래에 건립되어 있다. 이 절에는 현재 고색창연한 대웅전과 요사체가 남아있다. 사적기에는 백제 아신왕(阿莘王)이 나라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쓰여 있다. 세마사의 약사전은 조선 정조가 용주사를 중건할 때 함께 중건했다고 전한다.

오산 독산성에서 바라본 오산 시내
오산 독산성에서 바라본 오산 시내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꿈

오산시는 독산성과 세마대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는 오는 2025년까지 262억 원을 들여 정비 및 복원사업을 끝내고 수원화성, 화성 용주사의 융·건릉, 독산성, 궐리사를 하나로 묶는 세계문화유산 확대 지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오산시가 추진 중인 독산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확대 지정을 위해 수원시·화성시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기도 했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염태영 수원시장, 채인석 화성시장과 만나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이들 3개 지자체는 지역 상생협력 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설립한 ‘산수화 상생협력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이 모임은 독산성 유네스코 등재 협조를 구한 지역출신 안민석 의원의 요청으로 진행됐다. 협력위는 행정구역 조정 논란으로 생긴 세 지자체 간의 반목과 갈등을 해소하고 정조대왕의 애민사상과 개혁사상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 상생협력 발전을 강화하고자 지난 2012년 출범했다.

이 날 회의에서 지자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융건릉에 이어 현재 국가지원 복원사업으로 추진 중인 독산성과 궐리사를 추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확대 등재를 공동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이렇듯 시와 시민단체 문화계의 노력은 타 지역의 열정을 능가한다. 이번 학술조사단의 발굴결과가 예상을 엎고 수확을 얻자 고무된 분위기다. 독산성이 이미 백제 시대 축성되었으며 고구려 신라에 이어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오산시가 정부로부터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문화도시 지정은 오산시의 문화수준이 다시 한 단계 도약하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계기로 부각되고 있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독산성에 대한 10년간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연차적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며 오산시의 대표 문화재인 독산성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역사적 가치를 복원해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면서 “독산성의 문화적 가치를 전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지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장인수 오산시의회 의장도 “오산시의회는 독산성의 자연경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집행부와 협의를 거쳐 조례 등을 통해 잘 보존해 나갈 계획”이라며 “독산성과 관련된 예산은 여·야 상관없이 시의원 모두가 힘을 합쳐 적극 지원해 독산성이 오산시만의 자랑이 아닌 경기도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산 독산성 수로 및 수구
오산 독산성 수로 및 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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