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은 지난해 6월 개신교 분파인 루터교의 성지순례를 진행했다. 7대종단 지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이었던 엄기호 목사(앞줄 오른쪽에서 4번째)가 참석한 모습, 그러나 올해 네팔 성지순례에는 개신교 대표로 참석한 인사는 없었다. (출처: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천지일보 2019.6.25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은 지난해 6월 개신교 분파인 루터교의 성지순례를 진행했다. 7대종단 지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이었던 엄기호 목사(앞줄 오른쪽에서 4번째)가 참석한 모습, 그러나 올해 네팔 성지순례에는 개신교 대표로 참석한 인사는 없었다. (출처: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천지일보 2019.6.25

종지협, 7개 중 4개 종단 대표
9박 10일로 해외성지순례 강행
수억원대 경비 100% 국비지원
“문체부, 표 얻으려고 혈세낭비
“때 분별 못하는 종교지도자들
종교와 우리나라 망신시킨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급속히 확산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가 비상인 가운데 국내 7대 종단 지도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 종교지도자들이 9박 10일간에 걸친 해외 성지순례를 떠날 예정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종교지도자 간 타종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진행돼온 연례 행사지만 올해는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일 터져나오는 신종코로나 감염자로 종교단체들마저 해외 연수를 속속 취소하는 분위기에서 억대 국비를 들여 강행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해외 성지순례가 적합한지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따르면 종지협은 오는 12일부터 21일까지 9박 10일간 스페인과 포르투칼로 해외 순례를 떠난다. 종지협 관계자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성지순례 윤곽은 어느 정도 다 만들어졌다”며 “(신종코로나 확산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지만, 가능한 일정대로 진행하려고 한다”고 확인해줬다.

참석인원에 대해서는 “현재 수장단에서 4명 정도만 가는 것으로 얘기가 됐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인원 변동이 있을 수는 있다”며 “인원변동이 없으면 (예정대로) 순례를 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종지협 한 회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4명의 수장단은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천도교 송범두 교령, 원불교 오도철 교정원장, 종지협 대표의장 대한불교조계종 원행스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종지협은 한국 종교계 7명의 종교지도자들이 각 종단을 대표하는 모양새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참석하는 인사로 거론된 인사들은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불교 지도자다. 이 외에도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과 유교 성균관, 민족종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지도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보수진영이 종지협에 소속돼 있고, 개신교 진보진영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에 소속돼 있다.

그런데 한기총 대표회장은 지난해 전광훈 목사가 선출된 후 행사에 불참하고 있어, 이미 종지협의 활동에 균열이 갔다. 이웃종교계 대표자들이 관례적으로 참석해왔던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 목사는 “우상을 숭배하는 다른 종교인들과 연합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그 이유를 밝힌바 있다. 전 목사는 지난해 종지협 주관으로 진행했던 네팔 불교성지순례에도 불참했다. 올해도 종지협 내에서 개신교계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달 말 전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 연임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유교 성균관은 후임 관장 선출문제로 이번 행사에 불참의사를 밝혔고, 민족종교협의회 박우균 회장은 연로한 노구로 열흘에 걸친 해외 일정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7종단 중 3명이나 빠진채 해외순례를 떠나는 것은 당초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때 분별도 못 하는 지도자들”

앞서 문체부 박양우 장관은 지난 4일 한국종교인평화회의와 함께 간담회를 갖고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종교계 협조를 요청했다.

원행스님을 비롯해 그 자리에 참석한 종교 지도자들은 앞으로 종교집회, 행사 등을 개최할 때 철저한 예방조치를 통해 정부대응에 보조를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각 종단에서는 각종 대규모 집회 취소는 물론, 해외 성지 순례도 취소하는 형편이다. 지난 5일 전라북도는 관내 종교 지도자를 초청해 신종코로나 관련 예방에 주의를 부탁했고, 이 자리에서 태고종 관계자는 “단체모임이나 성지순례, 해외 성지순례도 취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해 국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9일 0시(중국 현지시간) 기준 전세계에서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805명, 확진자는 3만 7045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는 중국 내에서 3만 4673명으로 가장 많다. 중화권에서는 홍콩 26명, 대만 17명, 마카오 10명이 발생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일본 89명, 싱가포르 33명, 태국 32명, 한국 24명, 말레이시아 16명, 호주 15명, 독일 14명, 베트남 13명, 미국 12명, 프랑스 11명, 아랍에미레이트 7명, 캐나다 5명, 인도 3명, 필리핀 3명, 영국 3명, 이탈리아 3명, 러시아 2명, 벨기에 1명, 스페인 1명, 캄보디아 1명, 스리랑카 1명, 핀란드 1명, 네팔 1명, 스웨덴 1명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종지협이 떠날 예정인 스페인에서도 1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종지협 한 회원은 “온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초비상인데, 어떻게 종교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때를 모르냐”며 “해외 종교 지도자들을 만난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쪽 종교지도자들의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다면 ‘너네 나라는 이 시국에 종교지도자들을 관광시키냐’고 할 것이다. 이는 한국 종교지도자들이 우리나라를 망신시키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호화스러운 수억대 성지순례”

종지협 종교지도자들의 해외 성지순례 비용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종지협 해외 성지순례는 문체부 후원으로 지난 2010년부터 매년 진행됐다. 그간 일각에서는 국민의 혈세로 몇몇 종교지도자들에게 공짜 해외여행 기회를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문체부 예산안에 따르면 성지순례 비용이 포함 된 것으로 보이는 지난해 국제종교교류협력 부문 예산이 10억 3100만원에서 3700만원이 감소한 9억 9400만원이으로 책정돼 있었다.

종지협 회원은 “100% 국고인 데다가 1~3억 가량 드는 호화스러운 관광”이라며 “종교지도자들에게 표를 얼마나 얻으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문체부는 내년부터 불필요한 예산이 드는 이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또한 “지금 경제가(경제성장률이) 떨어져 버렸는데, 이 어려운 시기에 국고까지 쓰면서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는 종교지도자들의 덕목이 참 의심스럽다”며 “종교지도자들은 각 종단 신자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정신을 쏟아야 할 시간이다. 시기를 봐서 늦추고 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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