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사회 분위기 여전… 정부 나서야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육아 휴직을 낼까 하는데요.”

6세 미만의 아이를 키우는 한국 아빠들이 회사에서 이 같은 말을 자유롭게 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회사원 김진웅(38, 서울시 은평구) 씨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상사에게 이런 말을 꺼내면 승진에 관심이 없다거나 아내에게 잡혀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 강하다”며 “육아 휴직은 웬만한 용기로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최근 통계청은 지난해 남성 육아 휴직 신청자가 증가하고 있어 이 제도가 저출산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 휴직자는 819명으로 2009년 502명에 비해 1.63배 증가했다.

지난해 개정된 법률에 따르면 남성은 배우자 출산 뒤 3일간 출산 휴가를 낼 수 있고, 만 6세 이하의 자녀를 뒀다면 자녀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 1년 내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휴직 급여는 배우자의 출산 전 임금의 40%로 최저 5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까지 지급된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김 씨가 말한 사회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아빠들은 입을 모았다.

금융계열에 종사한다는 이영진(37) 씨는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에 100여만 원도 안 되는 육아 휴직급여를 받으면서 직장을 1년이나 쉬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육아휴직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씨는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현실적으로 양육에 드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은 아빠 몫이어서 내 집 마련비, 장래 양육비 등 경제적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두 아이의 아빠 정찬우(41, 충남 천안시 서북구) 씨는 직장에서 육아 휴직자로 인한 문제를 대체할 만한 대비책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 씨는 “둘째를 키울 때는 육아 휴직을 안 낼 작정이다. 첫째를 키울 때 출산 휴가를 내고 회사에 돌아왔더니 내 일까지 해야 했던 동료의 눈치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공석인 사람의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는 한계로 출산 휴가를 낸 며칠 동안 집에서 회사 일을 신경 쓰느라 사실 휴가답지 않은 휴가를 보내야 했다”고 털어놨다.

아빠들은 결론적으로 육아 휴직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사회 분위기 개선도 필요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육아 부담이 덜 할 수 있도록 해 이런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더 이득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전한다.

회사원 박모(32, 서울 강남구 논현동) 씨는 “육아 휴직을 낼 수 없게 하는 사회 전반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런 제도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건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라며 “쓰고 싶은 제도가 되도록 개선하면 신청자는 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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