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임존성(예산) 지수신의 처절한 항쟁사

예산 임존성에 있는 백제 복국운동 기념비
예산 임존성에 있는 백제 복국운동 기념비

백제 복국운동 거점 임존성의 항전

백제 ‘복국운동(復國運動. 부흥운동이라고도 함)’은 660년 여름 나당 연합군에게 왕도 사비와 고마성(웅진)을 정복당한 후 3년간의 처절한 항쟁사다. 이들은 몇 개월 후, 잃어버렸던 왕도 사비성을 되찾고 무려 200여개 성을 확보하는 등 기세를 보였다.

이들은 왜 항복하지 않고 나당 연합군에게 대항했을까. 그것은 후진 신라에 의해 자국이 멸망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백제는 삼국 중 가장 문화가 발전한 최고의 국가였다. 그것은 일찍이 대륙 남조(南朝) 문화를 받아들여 창의와 노력으로 이룩한 놀라운 결과였다. 백제는 전쟁 중이더라도 신라의 불사에 기술자들을 보내 돕기도 했다. 이것이 백제인들이 쉽게 패망을 수용하지 못한 이유다.

신라는 군사적으로도 열세였으며 여러 싸움에서 백제군에 연전연패를 당했다. 그런데 사비성이 함락당한 후 김춘추와 신라제장들 앞에 백제 의자왕이 무릎을 꿇고 잔을 올리는 치욕을 목격한 백제인들은 오열하고 비감에 젖어야 했다.

처음 백제 복국운동의 중심 세력은 바로 지금의 충남 예산 땅인 대흥 임존성(任存城)이었다. 왜 임존성에 백제 대규모 세력이 결집된 것일까. 백제 왕실의 잔존세력은 부여를 탈출하여 이들이 가장 신뢰했던 임존성으로 피신한 것으로 상정된다. 복국운동을 주도했던 종실 복신(福信)과 승(僧) 도침(道琛)은 임존성에서 달솔이었던 흑치상지(黑齒常之)와 지수신(遲受信)을 만나 항쟁을 모의하게 된다.

임존성의 둘레는 2450m이며 돌로 쌓여져 있다.
임존성의 둘레는 2450m이며 돌로 쌓여져 있다.

두 장수는 백제에 대한 충성심도 강했으며 또 서북지방의 여러 성 가운데 가장 용맹한 평을 듣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후에 이들의 활약상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복국운동의 중심이었던 복신은 일본에 있던 풍(豊)의 귀국을 종용하고, 주변 여러 성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얼마 후 임존성에 모인 백제 군사들은 3만 명이나 되었다. 많은 군사들의 결집으로 왕도 사비와 웅진 고마성을 탈환할 수 있었다.

풍왕이 귀국하자 백제 중심세력은 주류성(周留城)으로 거점을 옮겼다. 주류성은 산악지대로 험준한 곳이었으며 임존성과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상정된다. 필자는 <일본서기> 기록에 백강에서 올라온 당나라군과 신라 육군이 합세하여 북쪽으로 진군하여 주류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의 청양군 칠갑산 두솔성을 주목해 왔다.

어쨌든 풍왕과 복신은 임존성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임존성은 흑치상지와 지수신이 방어하게 되었다. 두 성은 여러 차례 신라군의 공격을 당했어도 무너지지 않았다. 백제 구역(舊域)의 모든 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대열에 참가한다. 위기를 느낀 당나라와 신라는 대규모공세를 착수했다. 당나라 측천무후는 많은 병력을 보내 주류성을 점령할 것을 주문했다. 백제 복국군들이 왜국에 원병을 청해 바다를 건너온다는 정보도 큰 부담이었다.

나당 연합군은 백강(白江)의 어귀에서 여러 차례 싸워 일본 함대를 격멸시켰다. 그리고 풍왕이 있는 주류성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왜국 지원군이 모두 격멸된 것을 안 풍왕은 주류성을 빠져 나와 고구려로 몸을 숨겼다. 주류성을 쉽게 정복한 나당 연합군은 북진하여 임존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임존성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나당 연합군은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한다. 풍왕의 새로운 왕성이었던 주류성이 함락되었어도 임존성만큼은 끝내 정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임존성을 지킨 주역은 누구였을까. 여기에서는 두 장군의 배신이 있었다. 바로 흑치상지와 사타상여였으며 홀로 남은 지수신(遲受信)만큼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

임존성의 결사항전은 백제 멸망사의 일대 반전이었다. 복국군을 이끌고 있던 지수신은 모든 사람이 배반을 했어도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 지수신의 의지는 5천 결사대와 함께 산화한 황산벌 장군 계백의 투혼을 방불케 한다.

백제정신을 지킨 임존성. 오늘은 호국의 성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본다.

임존성에 있는 우물지
임존성에 있는 우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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