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문충성(1938 ~ 2018)

손을 펴면 지금도 수평선 같은 손금이
어린 날의 꿈을 태운다
수평선을 넘어갈 팔자우다
외할머니 손잡고 점쟁이 찾아다니던 어린 날은
진주 강씨 집안의 단 하나 외손이었다 손금 덕으로
농사일도 안 하고 맨날 빈둥빈둥
잠자리잡기 연날리기로 큰 사람이 되어갔다
점쟁이 말하던 수평선이야 어디 한두 번만 넘었으랴
수평선을 넘으면 수평선은 또 있었다 제주섬에
태어나 수평선을 넘어본 사람은 안다 어디를 가나
제주 사람은 수평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그러다 바람도 잠자는 어느 겨울날 사각사각
첫눈이 내릴 그때쯤 아무도 몰래
이승의 온갖 덧없음 내버리고 나의 수평선을 건너가리라
 

[시평]

제주도는 지금 관광지로 그 어느 곳보다도 유명한 곳이 되었다. 국제공항이 있고, 고급호텔들이 즐비한 관광지인 제주도.

그러나 30년 전, 아니 40년 전, 아니 그 이전에는 오직 배나 타고 건널 수 있는 육지에서 떨어진 섬에 불과했었다. 온 섬 대부분이 화산석으로 되어 있어서 변변한 논도 없다는 섬. 그래서 제주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한 말의 쌀을 다 먹지 못한다는, 가난한 섬, 제주도.

이러한 섬 제주도에서 수평선을 넘는다는 것은 육지의 대처로 나가 나름 성공을 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도 했다. 제주도라는 섬을 벗어나 뭍으로 나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그 말이 바로 수평선을 넘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주도의 사람들은 수평선을 넘어 큰 도시로 나가는, 그런 꿈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수평선을 넘으면, 또 다른 수평선이 앞을 가로 막고, 넘으면 또 다른 수평선이 가로 막고, 넘고 넘어도 앞에서 일렁이며 버티고 있는 것이 바로 수평선임을, 제주의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평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수평선에 갇히어 산다고 말들을 한다. 우리 모두 이승에서의 덧없음 다하고, 마지막 넘는 그 수평선, 그때가 되어야 만이 비로소 우리 모두의 수평선 넘는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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