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일제강압으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한일강제합방이 일어난지 10년 사이에 조선 민중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졌다. 마음대로 생각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몸 하나도 성하게 추스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일제의 압박에 찍 소리 하나도 못하고 있지는 않았다. 1919년 3.1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자결권을 내세우며 희망의 기지개를 펼치는 저항성을 보였다. 일본 내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기운이 잦아들면서 무단통치정책을 완화시켜 식민지에 대한 회유방법으로 이른바 ‘문화정치’를 채택한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1920년은 일제 식민사에서 한민족에게 일대 전환점을 마련해 준 의미 있는 해였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치정책에 따라 각종 사회단체 설립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3월과 4월 민족신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하고 1920년 7월 조선체육회를 비롯한 각종 체육단체가 창립됐다. 

조선체육회는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근대체육을 연 전국조직의 신호탄이었다. 민족의 심신을 단련하며 근대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시대의 선각자, 독립운동가, 문화 예술인 등 70여명이 모여 7월 13일 역사적인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조선체육회 창립취지서에는 체육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한국인의 생명을 다시 일으키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국한문 혼용체로 된 당시 취지서의 주요 부분을 현대적인 문장으로 바꿔보면, “민족의 웅장한 기운을 일으켜, 강건한 신체를 만들고 사회의 발전을 이끌며 개인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선 운동을 장려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1920년 7월 16일자 ‘조선체육회에 대하여’라는 사설에서 조선체육회 창설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인간의 기운을 일으키고 도덕을 새롭게 하는데 체육회의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봤다. 이 기사에서 민족의 발달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고 전제하고 체육회 창립이 민족의 발달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체육회 창립 이후 체육을 통한 민족의 영웅들이 속속 탄생했다.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뭉개 트린 사이클 엄복동, 마라톤 손기정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조선창립회가 만들어 진 지 100년, 일제 해방과 6.25 전쟁, 독재정권과 민주화의 격한 풍랑 속에서도 체육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현대화의 산물이었다. 나라가 건국이 되기도 전인 1948년 7월 태극기를 앞세우고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시작된 대한민국 체육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세계 스포츠 열강 대열에 올라섰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유럽의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민족의 라이벌 일본을 한때 누르고 스포츠 한국의 위세를 떨쳤다.

창립 100주년을 맞는 2020년 경자년은 한국체육이 중대 기로에 놓이는 역사적인 해가 될 것이다. 오는 7월 도쿄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에서 한국 체육은 일본과의 숙명적인 대결을 벌여야 한다. 1964년 대회 이후 56년만에 다시 도쿄에서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일본은 금 30개를 노리며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10개 이상을 따내 종합 10위 안에 들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는데, 목표 달성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이다.  

인구 변화에 따른 엘리트 체육 기반이 흔들리고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남북 단일팀 구성 가능성도 불확실해지면서 2020 도쿄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에게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체육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운 대한체육회 100년 정신을 음미하면서 다시 비상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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