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한반도 정세진단] “비핵화 셈법 다른 北美… 北 도발 땐 북미관계 불확실성 고조”

[천지일보=김성완, 명승일 기자] ‘크리스마스 선물’을 언급하며 무력도발을 시사했던 북한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본지는 지난 12월 27일 천지팟 녹음실에서 ‘2020년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다’란 주제로 신년 좌담회를 열었다.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이사가 좌담회 사회를 맡았다. 패널로 나온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 소장과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군사행동 여부에 따라 북미관계의 향배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 소장은 “북한이 제 갈 길을 가거나 군사적 시비 형태를 보여준다면, 2017년 이전 상황보다 위기 지수가 높아질 수 있다”면서 “반면 북미 간 극적인 타협안이 나온다면 그걸 모멘텀으로 해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 교수는 “북한 비핵화 결심 배경에는 경제를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더 나쁜 행동을 해서 제재가 강화된다면 그 부분은 어려워질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미 간 양자협상 구도를 그대로 가져갈지, 아니면 중국 등이 개입한 다자구도로 갈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질의응답 전문.

=북미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는가.

고유환(고): 북한은 북한대로 내부 시간표가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내부 시간표가 있다. 북한은 연내에 미국이 새로운 셈법에 따라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내놓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니, 모멘텀을 살려서 판을 깨지 말자는 것이다.

남광규(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직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도발을 할 경우) 2017년 이전 상황보다 더 위험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물밑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확인할 순 없다. 결론적으로 미국과 북한은 상대방으로부터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북한에 손짓했지만, 북한 반응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고: 비국이 한국과 일본을 거쳐 중국을 갔고, 중국과 러시아도 안보리의 제재 일부 완화를 포함하는 내용의 새로운 결의안을 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제는 지켜볼 순 없다’ ‘모멘텀이 사라지면 판이 깨지면 한반도의 어떤 혼란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이는 사실상 북한에 대해 경고음도 있다. ‘중국, 러시아도 제재 완화를 위해 노력할 테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지금 궤도를 이탈하거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지 말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건이 중국과도 긴밀히 협의했다는 건 세계 중심의 두 국가가 북핵문제 해결에서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남: 북한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중국, 러시아의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지 않았나.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유추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이 응할 조건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건 비핵화에 대한 기본 출발부터가 달라서다.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다르다는 의미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다.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조치가 어느 정도 나와야만 미국도 그걸 명분 삼아 북한이 요구하는 걸 절충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 비핵화는 전혀 없었다. 단지 북한이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 정도에서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섣불리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수 없다.

고: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철회했다는 신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군사연습 중단과 관계개선 조치를 하라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비핵화의 최종 목표에 대한 명확한 이야기가 없는 가운데 중간에 초기 조치만 하고 제재를 풀고 도망갈 거 아니냐에 대한 불신이 있다. 미국은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비핵화 조치가 선행될 때 풀겠다는 의도다.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어떤 결정안이 나올 것 같나.

고: 대외적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북미협상에 대한 평가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 지도자가 얘기한 것과 비춰봐서 뭔가 새로운 길에 대한 정리를 해야 한다. 획기적인 새로운 길이 나올 수 없다고 본다. 올해 간 갈이 새로운 길이다. 올해 핵무력이나 국방력에서 상당히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발전됐다고 봐야 한다. 경제적으로 자력갱생 방식으로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갔다고 본다. 그래서 그간 약속했던 것에 구속받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미국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중국, 러시아 전통우방과 관계를 돈독히 하겠다는 것 이상의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남: 미국은 실무협상을 재개하려는 입장이라서 북한이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걸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 중국, 러시아가 중재 역할을 했지만, 그건 미국에 대해 북한이 할 수 있게끔 명분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이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성이 들어가 있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북한 핵능력은 어디까지 왔나.

고: 북한 스스로 주장하는 건 2017년 11월 화성-15형 발사 성공 이후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했다. 핵실험이나 핵능력이란 부분에서 그 완성은 미국을 타격할 만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을 장착할 수 있는 걸 의미한다. 북한은 스스로 이미 미국을 타격할 ICBM을 갖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주변 국가를 위협할 정도의 핵능력은 갖고 있다.

남: 북한이 지금 중점적으로 하는 건 핵 부분보다는 미사일 관련 기술의 고도화 작업이다. 미국으로선 가장 신경을 쓰는 게 미국 본토를 강타할 수 있는 ICBM 능력을 북한이 가졌느냐는 점이다.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상당히 근접한 수준으로 왔지만, 개발과 발전을 계속 필요로 하는 단계인 것 같다. 미국도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기술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만큼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그게 본격적인 ICBM 시험 발사로 나타났을 경우, 미국도 거기에 상응할 만한 대응을 생각할 수 있다.

고: 북미 간에 도발을 통해 대화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제재만 불러오지 효과가 없다. 그래서 지금 북한은 이미 완성했다고 하는 능력을 은연중에 과시하면서 전략국가의 지위를 높이고, 앞으로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쪽에 주력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데, SLBM이 있으면 2차 공격을 할 수 있다. 그 능력을 갖추면 자신들은 확고하게 미국에 대한 핵억제력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아직 SLBM까지는 장착실험이 아닌 일반 모의실험 정도다.

=2020년 북미관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전망해 달라.

남: 북한이 제 갈 길을 가거나 군사적 시비 형태를 보여준다면, 2017년 이전 상황보다 위기 지수가 높아질 수 있다. 반면 북미 간 극적인 타협안이 나온다면 그걸 모멘텀으로 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또는 서로 떠넘기는 식, 즉 ‘너가 먼저 선의의 조치를 행하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연말까지라고 시한을 잡은 게 스스로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된 것 같다. 다시 말해 행동반경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으로 봐선 미국은 기본입장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고: 미국 대선이 가장 큰 변수로 작동되는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이 가장 큰 목표라서 그동안 성과로 내세웠던 한반도 관리 부분에서 북한이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하려고 할 것이라고 본다. 판이 깨지길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비핵화 결심 배경에는 경제를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더 나쁜 행동을 해서 제재가 강화된다면 그 부분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미 간 양자협상 구도를 그대로 가져갈지, 아니면 중국 등이 개입한 다자구도로 갈지 지켜봐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는데, 회복 가능성이 있는가.

고: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남측 역할에 불만을 품은 북한은 ‘오지랖’이란 표현을 쓰면서까지 ‘당사자가 돼라’고 했다. 이후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사실상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미국을 너무 믿은 문제가 있었다. 그 두 가지 문제로 올해 1년은 이렇게 왔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관계를 완전히 배제하고 갈 수 없다. 북미관계가 잘되든 안 되든 내년도 남북관계는 또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나가려고 하지 않겠는가.

남: 문재인 정부가 그간 북미관계를 중재하거나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왔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론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한미 간 문제도 애매모호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으로부터 불신도 야기했다. 남북관계도 결국 북미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구속받는다. 북미관계가 어느 정도 진척되면, 남북관계도 다시 탄력을 받고 작년에 합의한 여러 부분에서 다시 추동력을 얻을 수 있다. 현재 국면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 번에 끝날 수 있는 게 아니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지금 단계에선 북한이 적어도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했다는 객관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 선행돼야 미국으로부터 행동변화를 이끌 명분이 확보된다.

고: 정부는 북미 간 돌파구가 생기면 남북관계는 거기에 연동돼 자동적으로 풀릴 것으로 봤다. 그래서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독자성이나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뼈아픈 대목이다. 한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했어야 했다. (하노이회담) 당시 정책 당국자 입장에선 남북문제보다 한미 간 협의가 잘되고 있고 북미 간에도 대화가 잘 되고 있으니, 그걸 지켜보자면서 미국을 너무 믿었던 게 화근이 됐다. 최근엔 트럼프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국 내 정치 변수까지 작동해 판이 흔들렸다. 거기다 미중관계, 한일관계, 남남관계 변수까지 덧붙여지면서 완전히 꼬여버렸다. 내년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정신을 되살려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주고받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해선 안 된다. 그런 부분에서 (북미가) 새롭게 가다듬고 향후에는 다자 방식 등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