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염원이지만 한 해를 뒤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 충격적인 사건들로 잠시도 평온할 틈이 없었다. 본지는 연말을 맞아 ‘유치원 개학연기 사태’부터 ‘화성연쇄살인범’, 국민을 둘로 나눈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올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10대 이슈를 키워드로 재조명해봤다.

좋은 소식이 쏟아져도 모자란 판국에 올해는 충격과 공포,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흉악범죄 사건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왼쪽부터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사람들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안인득’, 홧김에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을 한강에 유기한 ‘장대호’. ⓒ천지일보DB
좋은 소식이 쏟아져도 모자란 판국에 올해는 충격과 공포,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흉악범죄 사건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왼쪽부터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사람들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안인득’, 홧김에 살인을 저지르고 시신을 한강에 유기한 ‘장대호’. ⓒ천지일보DB

‘고유정·안인득·장대호’ 사건

전 남편 수면제 먹이고 살해

불 지르고 주민 무차별 공격

흉악범 “또 그럼 또 죽는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흉악범. 그들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신을 끔찍하게 훼손한 것뿐 아니라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바닷물에 유기하기까지했다. 좋은 소식이 쏟아져도 모자란 판국에 올해는 충격과 공포,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흉악범죄 사건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이런 사건들 가운데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 사건’과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사람들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 한강 몸통 시신 사건으로 불렸던 ‘장대호 사건’은 대표적인 흉악범죄 사례로 꼽힌다.

◆끝까지 계획범죄 부인하는 ‘고유정’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36)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제주에서 경기도까지 이동하며 살해한 전 남편의 시신을 훼손·유기했다. 전 남편의 시신은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은 한 남성의 실종 사건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고씨가 올해 6월 1일 자신의 거주지인 충북 청주 소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긴급체포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달 간 고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수사당국은 지난 7월 1일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혐의로 고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고씨가 지난 5월 25일 제주도 조천읍 소재 한 펜션에서 사전에 준비한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음식물에 섞어 전 남편에게 먹인 후 그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봤다. 또한 고씨가 5월 26일부터 31일까지 사건이 벌어진 펜션에서 숨진 전 남편의 시신을 훼손했으며, 그 일부를 제주 인근 해상에 버리고, 고씨 가족이 별도로 소유한 경기도 김포 소재 한 아파트에서 나머지 시신을 추가로 훼손해 유기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경의 조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고씨는 전 남편 살해에 이어 의붓아들 살해 혐의까지 받게 되면서 추가로 기소됐다. 검찰은 고씨가 지난 3월 2일 오전 4∼6시께 충북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 A(5)군의 등에 올라타 손으로 A군의 얼굴을 침대에 묻히게 한 뒤 살해했다고 봤다.

얼굴 가리고 2차 공판 출석하는 고유정【제주=뉴시스】‘전 남편 살해 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이 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전 남편 살해 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이 지난 9월 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고씨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중이다. 올해 8월 12일 고씨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된 이후 4개월이 지나는 동안 9차례 공판이 열렸다. 다음 10차 공판은 내년 1월에 진행될 예정이다. 애초 고씨의 구속기한(12월 31일)을 고려해, 법원은 이달 중 고씨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려야 했다. 하지만 법원은 고씨의 의붓아들 살해 사건을 전 남편 살해 사건 재판과 병합 심리하기로 결정, 재판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전 남편의 시신을 두 차례 훼손한 것을 인정하고 있는 고씨는 전 남편을 살해할 범행을 철저히 계획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선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졸피뎀 성분이 고씨의 전 남편의 혈액에서 검출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와 더불어 고씨가 졸피뎀 사용에 대한 흔적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했던 정황, 살해 직후 펜션 주인과 태연하게 통화한 녹음 내용이 공개되면서 재판은 고씨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고씨의 의붓아들 살해 사건에 대한 재판은 8차와 9차 공판 두차례 걸쳐 진행됐다. 의붓아들 A군에 대한 국과수 부검 결과 특별한 외상이 없는 상황에서 코와 입이 막혀 질식에 이르는 비구폐쇄 질식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A군과 함께 잠을 잤던 아버지의 모발에서는 독세핀 성분의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다. A군의 사망 추정 시간에 고씨가 깨어 있었다는 증거도 나왔다. 재판부는 내년 1월 20일까지 고씨에 대한 결심공판을 열고 늦어도 2월에는 선고공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법정 최고형 ‘사형’ 선고된 안인득

올해 4월 17일 새벽 4시 25분경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내 자신의 집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지른 뒤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하는 등 총 22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의 피고인 안인득(42)은 최근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27일 창원지법 315호 대법정에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평의 결과 및 재판부가 이같이 선고한 것이다. 재판 전 과정을 지켜본 시민 배심원 9명은 약 2시간에 걸친 평의 끝에 안인득이 ‘유죄’라는데 전원 동의했다.

재판부는 “조현병에 의한 정신병에 사건이 발생해 잔혹하고 중대한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의 중죄를 경감시킬 수 없다”면서 “피해자가 많고 범행 정도가 심각한 점, 참혹한 범행에 대한 진정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범 우려가 있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배심원에서도 사형 8명, 무기징역 1명을 결정했기에 사형에 처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후의견을 통해 안인득이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으며, 다수를 잔혹하게 살해하거나 살해하려고 한 점, 피해회복이 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사형을 구형했다.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19일 오후 진주경찰서 앞에서 진주 방화·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42)이 신상공개 결정 후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안씨는 지난 17일 경남 진주 소재 아파트 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사상자가 20명 발생했다.경찰은 지난 18일 오후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구속된 피의자 안인득(42)의 실명, 나이,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 피해가 발생한 이번 참사에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봤기 때문.한편 지난 18일 오후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방화·살인 등 혐의를 받는 안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천지일보 2019.4.19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19일 오후 진주경찰서 앞에서 진주 방화·살인사건 피의자 안인득(42)이 신상공개 결정 후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천지일보 2019.4.19

검찰에 따르면 안인득은 범행대상을 미리 정하고 범행도구를 사전에 사들이는 등 철저한 계산하에 범행을 저질렀다. 살해된 피해자들 모두 급소에 찔려 사망했다.

경찰은 CCTV 분석 등으로 안씨가 사건 당일 새벽 흰색 기름통을 들고 나가 인근에 있는 셀프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 귀가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406호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것을 확인했다. 그는 해당 아파트 2층 엘리베이터 입구에 머물러 있다가 불을 피해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5명의 사망자 중 12세 초등학생, 19세 학생 등 4명이 여성이며, 총 22명의 사상자 중 15명이 여성으로 확인됐다. 그중에는 70대 노인도 3명이 포함돼 사상자 대다수가 약자로 밝혀졌다.

무방비 상태로 피의자와 맞닥뜨린 10대 여학생 2명과 59세(여)·65세(여)·74세(남) 주민 3명은 수차례 자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모두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

◆‘한강 몸통시신 사건’ 피의자 장대호

한강에 사람의 몸통만 떠오른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드러난 사건도 충격이었다. 이른바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피의자 장대호(38)는 숨진 피해자를 향해 “다음 생애 또 그러면 또 죽는다”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더 큰 충격을 전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8월 8일이었다. 장씨는 이날 서울 구로구 자신이 근무하는 한 숙박업소에서 B(32)씨를 둔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사체를 수일 동안 방치하던 장씨는 B씨의 시신을 훼손한 뒤 지난 8월 12일 새벽 전기자전거를 이용해 한강에 시신을 유기했다.

B씨의 시신은 같은 날 오전 9시 15분께 고양시 한강 마곡철교 부근에서 몸통 부분만 발견됐다. 시신은 발견 당시 알몸 상태로, 시신 주변에서는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옷 등 유류품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모텔 손님을 살인하고 시신까지 훼손한 혐의로 구속된 장대호(38)가 21일 오후 보강수사를 받기 위해 경기 고양경찰서로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모텔 손님을 살인하고 시신까지 훼손한 혐의로 구속된 장대호(38)가 21일 오후 보강수사를 받기 위해 경기 고양경찰서로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1

시신 발견 직후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1차 소견을 받았으나, 훼손 정도가 심해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8월 16일 B씨의 시신 일부로 추정되는 오른팔 부위가 담긴 검은 봉지가 발견됐다. 경찰은 오른손 지문 채취를 통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했고, 이어 같은달 17일 한강 방화대교 남단에서 머리 부위를 발견했다. 장씨는 시신이 발견되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경찰에 범행을 자수했다.

장씨가 경찰 조사에서 밝힌 범행 동기는 “(피해자가) 숙박비도 안 주려고 하고 반말을 하며 기분 나쁘게 해서 홧김에 살해했다”였다.

경찰은 장씨가 근무한 모텔에서 범행 도구를 확보하고, 인근 폐쇄회로(CC)TV 등을 조사해 그의 범행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장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장씨는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나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음 생애 또 그러면 너(피해자) 또 죽는다”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사람을 살해하고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장씨는 결국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지난달 5일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기소된 장대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최소한의 후회나 죄책감도 없이 이미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한계를 벗어나 추후 그 어떤 진심 어린 참회가 있더라도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다”면서 “석방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무기징역형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와 사법부까지 조롱하는 듯한 태도는 피고인을 우리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것만이 죄책에 합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살인을 가벼운 분풀이 수단으로 삼은 극도의 오만함, 만난지 2시간이 되기도 전에 범행도구와 범행방법을 결정한 강력했던 살인의 고의성, 비겁하고 교활한 범행수법 등 피해자의 인간 존엄성을 철저하게 훼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악한 범죄”라며 “피고인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된 범죄로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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