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종교인연합 3.1운동 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 종단대표 등 참석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앞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종교인연합 3.1운동 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 종단대표 등 참석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앞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23

23일 종로구 태화빌딩 앞에서 제막식

건립위원회 3.1운동 100주년 기리고자

이만열 교수 “한반도 문화통일에 확신”

 

민족대표 33인, 천도교 등 모두 종교인

조선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합의 이뤄

“오늘날 선배 종교인의 지혜·용기 되새겨야”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올해 마지막을 앞두고 23일 서울 종로구 태화관 터(현 태화빌딩)에서 제막됐다.

천도교, 불교, 개신교 등 3대 종단으로 구성된 ‘종교인연합3.1운동100주년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회)’가 제작한 이 기념비는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식이 거행됐던 태화관의 옛 터이자, 지금은 ‘감리회태화복지재단(대표 전명구)의’ 소유인 태화빌딩 앞에 세워졌다. 약 1m 높이 기념비 전면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비’라는 문구가 적혔고, 비석 아래쪽엔 ‘아, 새하늘 새땅이 열리도다’란 말이 적혀졌다.

제막식에는 박남수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 전명구 태화복지재단 대표이사, 송범두 천도교 교령, 대한불교조계종 덕조스님 등이 50여명이 참석했다.

박 대표는 “3.1운동은 위기의 시대 극복의 방법을 보여준 위대한 역사”라면서 “한편으론 세 종단의 화합의 역사가 100년이란 시간동안 1919년에 머물러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기념비가 앞으로의 새로운 역사, 1919년과 2119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며 “나라와 민족이 힘들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이 비가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제막식에서는 3대 종단의 청년 대표들이 나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또 종단 지도자들의 “대한독립 만세!” 외침에 참석자들이 함께 만세 삼창을 했다.

감사말씀을 전하러 나온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먼저 나라의 독립과 공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신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그들이 아니었다면 독립된 나라에서 이런 행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 종교 종파의 이념을 넘어 이 기념비를 건립하도록 종교계에서 뜻을 모아주심도 감사드린다”면서 “이 비문에 나타난 ‘아 새하늘 새땅이 열리도다’의 기원을 따라 아직도 이루지 못한 한반도의 문화 통일과 세계의 공존공영(共存共榮)이 이뤄질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앞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앞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23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인사동 한 식당 태화관에서 ‘3.1독립선언서’가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됨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종교지도자들이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당시 한일병탄과 함께 시작된 일제 탄압으로 국내 종교계 이외에는 조직적인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3.1운동을 이끈 전체적 조직의 중심은 ‘천도교’였다. 3.1운동 모의 초기 단계인 1월 20일, 천도교 지도부는 독립운동 3원칙으로 ‘대중화·일원화·비폭력’으로 정했다. 당시 의암 최병희가 이끈 천도교는 교세와 재정이 탄탄했다고 알려졌다. 천도교는 하나의 종단만으로는 민족운동이 될 수 없다고 판단, 개신교와 불교 측에 독립운동을 함께하자고 요청했다. 교리 문제로 이견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조선독립’이라는 대의 앞에서 합의를 이뤄냈다.

이렇게 개신교인 16인, 천도교 15인, 불교계 2인 등 모두 종교인으로 민족대표 33인이 구성됐다. 이들은 질서를 비폭력의 원칙으로 제시하며, 비폭력 평화정신을 상징하는 직접행동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들 대다수는 후에 징역 2~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뤘다. 후에 3.1 운동을 조직해 거족적 운동으로 발전시키는데 이들 33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는 여기서 나온다.

이들은 나라 안팎에서 ‘기개’와 ‘저항’의 시발점 구실을 한 장본인들이었다. 해방 후에는 건국훈장 등을 받으며 민족자존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위원회는 이날 ‘종교인연합 3.1운동 100주년기념비 건립 취지문’을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은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이루는 바탕이었다”면서 “하지만 백년전에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꿈꾸었던 평화 세상은 오늘도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고 했다.

아울러 “백년 전 그 위대했던 선배들의 지혜와 용기를 기억하고 되새기며 또한 백년 후의 우리 후손들이 한반도에서 누릴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의 그날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종교인연합 3.1운동 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 종단대표 등 참석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앞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종교인연합 3.1운동 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 종단대표 등 참석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앞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비 제막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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