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염원이지만 한 해를 뒤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 충격적인 사건들로 잠시도 평온할 틈이 없었다. 본지는 연말을 맞아 ‘유치원 개학연기 사태’부터 ‘화성연쇄살인범’, 국민을 둘로 나눈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올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10대 이슈를 키워드로 재조명해봤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일본 맥주, 라면 등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1일 오후 서울 은평구 365싱싱마트에 일본제품 판매 중단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7.2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일본 맥주, 라면 등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1일 오후 서울 은평구 365싱싱마트에 일본제품 판매 중단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7.21

마트·편의점도 ‘보이콧 재팬’

대마도 방문 한국인 ‘뚝’ 끊겨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올해 7월 일본 정부의 경제·무역 보복 조치로 고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보이콧 재팬’을 외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베정부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국민들 스스로 내기 시작하면서 ‘독립운동은 못 해도 불매운동은 한다’ 와 같은 문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이후 8개여월 만인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스마트폰과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강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조치를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어 ‘수출관리 운용상’ 재검토를 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 7월 2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G20 정상회의 때까지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만족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 속내를 드러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 개정안을 각의에서 처리한 가운데 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 개정안을 각의에서 처리한 가운데 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리스트에 오른 품목이 국산화율이 낮은 화학소재로, 국내 기업에 큰 피해가 될 것으로 우려해 일본 정부에 조치 철회와 협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같은 달 28일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인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에서 최종 제외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속담처럼 한국 정부는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종합 대응계획과 함께 관광, 식품, 폐기물 수입 등에 대한 안전조치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9월 11일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했고, 9월 17일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발표해 18일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반영하고, 인허가 등 행정절차를 최소화 시키는 지원책을 내놨다. 또한 영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외교에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섰다. 일본의 조치에 가장 큰 피해를 우려했던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에서 들여왔던 수출규제 품목에 대한 물품의 국산화를 시작했다.

◆온 국민이 참여한 불매운동

일본이 이 같은 조처를 취하면서 우리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국민들 사이에는 ‘독립운동은 못 해도 불매운동은 한다’ ‘49싶어도 45지말자’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NO 아베’ ‘친일 적폐 청산’ 등 문구가 유행처럼 돌았다.

국민들은 비교적 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맥주, 의류, 화장품부터 시작해 전자제품,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불매운동을 이어갔다. 시민들은 ‘NO 재팬’ 등 일본 보이콧 스티커를 제작해 부착하고, 일본 브랜드 리스트를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이에 일본 언론들은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폄하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일제 불매운동은 지난 25년간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역시 한국인들은 냄비’ ‘이 운동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 등의 예측을 쏟아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를 선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의정부고등학교학생연합 학생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를 선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국마트산업노동조합원들이 24일 서울역 롯데마트 앞에서 열린 ‘마트노동자 일본제품 안내 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4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전국마트산업노동조합원들이 24일 서울역 롯데마트 앞에서 열린 ‘마트노동자 일본제품 안내 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4

하지만 일본 언론들의 예측과는 달리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민들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거부하고,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무역 보복으로 답했다” “목숨을 건 독립운동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이 무릎을 꿇을 때까지 불매운동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등의 목소리를 냈다.

일본물품 불매운동에 고등학생들까지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등학생들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업체가 만든 학용품을 사용하지 않겠다”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기성세대가 될 때까지 불매운동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등 의지를 보이며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일본물품 불매운동은 전국 각지의 마트, 편의점, 자영업자까지 확산됐다. 마트와 편의점 곳곳에서 ‘우리 마트는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안내문이 붙혀진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 노동자들은 일본의 경제보복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며 “고객들에게 일본 제품을 안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불매운동에 앞장서 동참했다.

일본 불매운동 확산에 애꿎은 피해를 본 곳도 있다. 불매운동이 시작되며 초밥, 라멘 등 일본 음식을 먹는 것조차 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국산재료를 사용해 일식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까지 피해가 돌아갔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일본여행 취소 등 일본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8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일본 국적의 한 항공사 탑승 수속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 ⓒ천지일보 2019.7.2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일본여행 취소 등 일본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8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일본 국적의 한 항공사 탑승 수속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 ⓒ천지일보 2019.7.28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마트나 편의점주에게 일본 제품을 왜 파냐고 강력히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쳐 어쩔 수 없이 일본제품을 내놓지 못하거나, 한달 매출이 급격히 주는 현상도 있었다.

한 편의점 사업자는 “고객들의 눈치가 보여서 일본제품을 사실상 못 들여놓고 있다”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하루아침에 급락해 운영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관광까지 이어진 ‘NO 재팬’ 열기

NO 재팬은 불매운동을 넘어 관광까지도 이어졌다. 우리 국민의 해외 관광지 1위로 손꼽혔던 일본은 이런 여파로 인해 방문객이 뚝 떨어졌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밝히기 전인 7월전까지 한달 평균 일본으로 출국하는 한국인수는 58만명이 넘었다. 그러나 수출규제 이후 방문객이 매달 평균 4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한때 SNS에는 일본여행 취소 인증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연말 휴가지를 동남아로 변경하는 등 국민들 스스로 ‘자발적 여행 중단’을 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일본 여행수요가 급감하자, 일본발 노선 운항을 축소하거나, ‘땡처리 항공권’으로 항공권 가격을 하락시켜 판매했다.

한국인들의 NO 재팬 움직임에 한해 41만명까지 한국인이 방문했던 대마도(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섬)는 관광객이 뚝 끊겨 현지 주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대마도를 찾는 한국관광객이 월 3000명대로 90%까지 감소했다. 한국인의 발길이 끊긴 대마도의 상인들은 생존권을 크게 위협받고 있어 한국인들이 다시 찾아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1월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장의 뜻을 밝히면서 일본 불매운동이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불매운동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이 갈등의 시작인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하기 전까지 우리 국민의 일본 보이콧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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