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염원이지만 한 해를 뒤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 충격적인 사건들로 잠시도 평온할 틈이 없었다. 본지는 연말을 맞아 ‘유치원 개학연기 사태’부터 ‘화성연쇄살인범’, 국민을 둘로 나눈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올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10대 이슈를 키워드로 재조명해봤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성·속초·강릉 등 강원도 지역에서 발생한 큰 산불로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4월 5일 강원 속초시 장천마을의 불에 탄 집. ⓒ천지일보 2019.12.1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고성·속초·강릉 등 강원도 지역에서 발생한 큰 산불로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4월 5일 강원 속초시 장천마을의 불에 탄 집. ⓒ천지일보 2019.12.15

도로 전신주 개폐서 산불 시작

역사상 가장 많은 소방차 출동

상황판단 회의 통해 총력 대응

[천지일보=이수정 기자] “저장했던 곡식은 물론이고 밭, 집, 농기구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다 타버렸습니다. 이제 뭘 먹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올해 4월초 강원도 고성과 속초 일대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유례없는 산불은 수많은 피해와 사상자를 낳은 ‘화마’ 그 자체였다.

◆화마, 개폐기 ‘작은 불씨’로부터 시작

화재가 발생한 올해 4월 4일 오후 7시 17분께 불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성콘도 인근 주유소 앞 도로변 전신주 개폐기에서 시작됐다. 소방당국은 당시 전신주에 달린 개폐기와 연결된 전선이 강풍에 심하게 흔들리다 불이 붙은 것으로 봤다.

불은 당일 최대 순간풍속이 초속 35.6m에 달했던 강풍을 타고 근처 야산으로 옮겨붙었으며, 고성 토성면 천진리와 속초시 장사동 등 두 갈래로 번지면서 급속히 확산했다. 이에 강원도 고성·속초와 강릉·동해·인제 일대는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이게 됐다.

게다가 불똥이 수백m씩 날아가 옮겨붙는 ‘비화(飛火)’ 현상까지 보이면서 피해 지역이 급격히 늘었다. 속초소방서는 신고 접수 10여분 만에 진화 장비와 인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산불이 강풍을 타고 급속히 번지면서 초기 진화에는 실패했다.

산불이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속초 도심과 해안으로까지 번지며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신속대응으로 3일 만에 큰 불 진압

산불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신속한 총력 대응을 지시하고 4월 5일 국가재난사태 선포에 이어 6일에는 강원 고성군·속초시·강릉시·동해시·인제군 등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전국 시·도에 가용 소방력이 총동원되면서 고성·속초 산불은 발생 12시간여 만인 4월 5일 오전 9시께 주불 진화가 완료됐고, 강릉·동해 산불도 발생 17시간여 만인 4월 5일 오후 5시께 큰 불길이 잡히는 등 진화가 이뤄졌다.

이후 산림청은 지난 4월 6일 정오를 기해 강원 인제 산불 진화를 완료함에 따라,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 모두를 진화 완료했다고 밝혔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강원도를 뒤덮은 산불이 진화된 지 닷새가 올해 4월 10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고성군 원암리의 불탄 한 가옥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번 산불로 강원 산림 1757㏊가 불탄 것으로 집계됐다. ⓒ천지일보 2019.12.15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강원도를 뒤덮은 산불이 진화된 지 닷새가 올해 4월 10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고성군 원암리의 불탄 한 가옥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번 산불로 강원 산림 1757㏊가 불탄 것으로 집계됐다. ⓒ천지일보 2019.12.15

◆강원산불 피해 면적 ‘여의도 두배’

산불로 인한 피해 규모를 살펴보면 2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산불이 강원도 전역으로 확산하자 인근에 거주한 4000여명이 대피했고, 1757ha에 달하는 산림과 주택, 시설물 총 916곳이 전소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산림 피해면적은 고성 250㏊, 강릉 110㏊, 인제 25㏊ 등으로 최종 파악됐다. 이는 축구장 면적의 539배에 달하고, 여의도 면적(290㏊) 두배에 육박한다.

이외에도 비닐하우스 9동, 관광세트장 109동, 오토캠핑리조트 46동, 동해휴게소 1동, 컨테이너 1동, 농업기계 241대, 기타시설 391곳 등도 불에 타거나 그을리는 피해를 입었다. 통신 피해의 경우 3개 통신사 기지국 646곳이 불에 타면서 인터넷 1351회선에 장애가 발생했다.

◆이례적인 전국 소방차 출동

강원도 전역으로 퍼진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소방당국은 제주를 제외한 전국 시·도의 가용 소방력 총동원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소방차 872대, 소방관 3251명이 강원도로 집결했고, 110여대의 헬기도 동원됐다.

이는 단일 화재 역사상 가장 많은 소방차가 출동한 사례로 기록됐다. 여기에 더해 국방부는 군 헬기 32대, 군 보유 소방차 26대와 장병 1만 6500여명을 추가로 투입해 산불 진화를 지원했다.

속초경찰서의 발빠른 대처도 산불 진화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들은 발화 지점과 7㎞ 떨어진 화약창고에서 뇌관 2990발, 폭약 4984kg, 도폭선 299m을 신속히 옮기면서 대형 참사를 막았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강원 속초·고성의 산불피해주민들이 올해 6월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연 가운데 장일기 속초고성산불피해자 비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피해주민들은 정부에 즉각적인 보상대책을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9.12.15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강원 속초·고성의 산불피해주민들이 올해 6월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연 가운데 장일기 속초고성산불피해자 비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피해주민들은 정부에 즉각적인 보상대책을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9.12.15

◆화재 진화 속 감동적 이야기

SNS상에서는 강원도 대형 산불 진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고속도로가 전국에서 온 소방차로 가득 찬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고, 해당 사진이 담긴 게시물엔 ‘감동적이다’ ‘소방관 파이팅’ 등의 응원 메시지가 달리며 큰 호응이 일었다.

또한 강원도 인제군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자신의 트위터에 ‘화재로 인해 차량 및 쉴 곳이 필요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게시된 글에는 ‘직접 모시고 와 펜션에 무상으로 모시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는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지만, 누군가 차 좀 태워달라는 글을 올린 것을 보고 새벽에 보호가 필요한 분들을 찾으려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도로에서 방황하던 60대 남성 한 명을 펜션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산불로 피해 본 이를 돕는 사람들의 선행이 담긴 게시글을 본 네티즌들은 “세상의 히어로들을 다 만나고 온 기분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애써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끊이지 않는 ‘보상 논란’

산불 진화는 완료됐지만 여전히 이와 관련된 보상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피해 보상 비율을 놓고 한국전력공사(한전)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전 측은 손해사정사의 실사를 통한 총 피해 금액의 55% 보상을 제시했다. 반면 비대위는 한전의 책임을 물으며 100% 보상을 요구했다. 한전이 실사를 통해 책정한 손해 사정액은 777억원이지만, 비대위는 최소 250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최근 경찰이 발표한 산불 수사 결과를 두고서도 의견충돌이 계속됐다.

비대위는 “한전 측은 자연의 영향을 들어 경과실이라고 주장하지만 늘 강풍이 부는 지역에 낡은 전선을 교체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예견된 사고”라고 주장했다.

노장현 고성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은 “협상을 시작할 때 한전 사장이 피해 지역에 와서 형사적 책임을 떠나 이재민을 위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밝혔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강원 속초·고성의 산불피해주민들이 올해 6월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즉각적인 보상대책을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9.12.15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강원 속초·고성의 산불피해주민들이 올해 6월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즉각적인 보상대책을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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