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1전시관 내 ‘세계제패 그리고 슬픈시상식’ 전시코너. 이런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데 세계재패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없었던 손기정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잘 꾸며졌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1전시관 내 ‘세계제패 그리고 슬픈시상식’ 전시코너. 세계재패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없었던 손기정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잘 꾸며졌다. ⓒ천지일보 2019.12.13

‘영웅의 이야기’ 손기정기념관

1936년 베를린올림픽 우승자

애니메이션 영상전시 ‘생동감’

민족자긍심·나라소중함 일깨워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모든 게 길이었고, 모든 곳을 달렸다. 오로지 달릴 뿐이었다.”(손기정)

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어딘가 낯선 장소를 찾아가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색다른 경험을 때때로 장소가 아닌 사람에게서 느끼곤 한다. 나와는 다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만나다보면 마치 새로운 길을 걷는 듯 신선한 경험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라를 잃은 슬픔 가운데서도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안주하지도 않았으며 끈질긴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세계를 제패하고 민족의 긍지를 높인 ‘손기정’ 선수의 삶의 이야기는 사람을 통한 여행에 있어 최고의 기쁨과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 그를 만나러 서울 중구 만리동에 위치한 손기정기념관을 찾았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체육공원 내 손기정기념관 외관.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체육공원 내 손기정기념관 외관. ⓒ천지일보 2019.12.13

서울역에서 걸어서 10여분 정도에 있고, ‘손기정체육공원’이라는 버스정류장에서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손기정기념관은 공원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손기정 선수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제1전시실을 비롯해 제2전시실, 영상실 등 상설전시실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1월 1일이나 설날·추석, 매주 월요일(휴관)이 아니라면 언제든 누구나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다.

◆차비 없어 20리길 매일 달리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며 스포츠 영웅이자 민족의 긍지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됐다. 나라를 잃었고 가난과도 싸워야 했던 그는 ‘달리기’를 통해 ‘시골 소년’에서 ‘세계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기념관에 들어가 왼쪽으로 돌면 ‘도전·극복·승리’를 주제로 한 손기정 선수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제1전시실을 관람할 수 있다. ‘소년의 꿈 그리고 어머니의 선물’의 타이틀을 건 공간에선 손기정 선수의 어린시절 그가 신고 뛰었던 신발 ‘다비’가 전시돼 있다. 뛰기만 하면 벗겨지는 고무신을 새끼줄로 꽁꽁 묶고 다시 달리기를 했던 그를 걱정하던 어머니는 그에게 이 신발을 선물했다.

다비는 고무신보다 훨씬 가볍고 벗겨지거나 발목이 쓸려나가는 일도 없었다. 스케이트를 살 돈이 없어 달리기만 했다는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이 전시 공간 한쪽 벽면에 마련된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아기자기한 그림체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도전·극복·승리’를 주제로 한 손기정 선수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제1전시실 내 ‘소년의 꿈 그리고 어머니의 선물’이라는 타이틀을 건 전시공간. 손기정 선수가 신고 뛰었던 신발 ‘다비’가 전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도전·극복·승리’를 주제로 한 손기정 선수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제1전시실 내 ‘소년의 꿈 그리고 어머니의 선물’이라는 타이틀을 건 전시공간. 손기정 선수가 신고 뛰었던 신발 ‘다비’가 전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도전·극복·승리’를 주제로 한 손기정 선수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제1전시실 내 ‘소년의 꿈 그리고 어머니의 선물’이라는 타이틀을 건 전시공간. 한쪽 벽면에 마련된 스크린에서 아기자기한 그림체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 중이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도전·극복·승리’를 주제로 한 손기정 선수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는 제1전시실 내 ‘소년의 꿈 그리고 어머니의 선물’이라는 타이틀을 건 전시공간. 한쪽 벽면에 마련된 스크린에서 아기자기한 그림체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 중이다. ⓒ천지일보 2019.12.13

가난했기 때문에 달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소년 손기정은 보통학교에 다닐 무렵 해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배워야 했다. 16세가 된 그는 중국 단둥의 작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차비가 없어 신의주에서 압록강 철교 그리고 단둥에 이르는 20여리 길을 매일 달렸다. 얼어붙은 압록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다른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스케이트를 살 돈이 없어 스케이트 선수의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돈이 들지 않는 달리기를 선택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고 이동한 공간에는 보통학교 교실이 재현돼 있고 그 앞에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운동장을 달리는 손기정 석고상이 전시돼 있다. 석고상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손기정과 주변인물들’을 주제로 그를 도와줬던 인물, 동료, 스승 등에 대한 소개 게시물이 전시돼 있다.

◆세계제패 그리고 슬픈시상식

손기정은 1932년 신의주 대표로 제2회 경영마라톤대회에 참가해 2위를 차지하면서 육상명문으로 알려진 양정고보에 입학한다. 이후 1935년 풀코스마라톤대회 우승, 전일본 마라톤선수권대회 우승 등 마라톤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그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마라톤 금메달을 딴 첫 번째 한국인이 됐다.

앞서 손기정은 1935년 일본 도쿄에서 2시간 26분 14초로 세계기록을 끌어올렸다. 이 기록은 약 20년이 흐른 뒤인 1954년 영국의 짐 피터스(2시간 17분 39초)에 의해 깨졌다.

‘1936년, 그 날의 베를린’ 전시공간에서는 그가 경기에 임한 시작부터 끝인 우승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시간·장소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벽을 따라 설치된 그림들, 중간중간 배치된 체험기기 등은 아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그날의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됐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1전시관 내 ‘1936년, 그 날의 베를린’ 전시공간. 손기정 선수가 경기에 임한 시작부터 끝인 우승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시간·장소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1전시관 내 ‘1936년, 그 날의 베를린’ 전시공간. 손기정 선수가 경기에 임한 시작부터 끝인 우승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시간·장소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1전시관 내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을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공간. 영상과 동시에 당시 독일 아나운서의 중계방송도 헤드셋을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1전시관 내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을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공간. 영상과 동시에 당시 독일 아나운서의 중계방송도 헤드셋을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천지일보 2019.12.13

이 체험공간을 지나면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을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고, 동시에 당시 독일 아나운서의 중계방송도 헤드셋을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당당한 그였지만,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은 어떤 기쁨도 나타내지 않은 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월계관수로 가린 그의 얼굴엔 나라를 잃은 이의 슬픔이 묻어났다. ‘세계제패 그리고 슬픈시상식’ 코너에서는 이런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데 세계재패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없었던 손기정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잘 꾸며졌다. 옆에 마련된 전시공간에는 손기정이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수여받은 금메달과 우승상장, 월계관 등이 전시돼 있다. 모두 문화재로 등록된 전시물이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수여받은 월계관과 금메달.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수여받은 월계관과 금메달. ⓒ천지일보 2019.12.13

손기정의 금메달은 현재까지도 일본이 딴 금메달로 돼 있다. 올림픽 공식 기록에는 손기정의 국적 또한 일본, 이름도 손기테이로 돼 있다. 손기정은 살아생전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 무척 애썼지만 일본 올림픽위원회가 국적 변경 신청을 해주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다. 다만 손기정의 일대기를 쓴 자료에는 국적을 한국으로 밝히고 있다. 이름 또한 손기정으로 표기됐고, 그가 일본국적을 달고 경기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고 있다.

◆난생 처음 태극기 만났던 순간

제1전시실을 나오면 정면에 휴게실과 같은 공간이 있어 잠시 쉬었다가 제2전시실을 관람할 수 있다. 제2전시실은 ‘민족정신·진정한 승리’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세계재패 이후 행보를 중심으로 민족과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손기정의 일화 등 각종 영상물과 전시물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2전시실. 이곳은 ‘민족정신·진정한 승리’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손기정이 대회 후 난생 처음으로 태극기를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애니메이션, ‘일장기 말소사건’, 1947년 지도자로서 제2의 황금기를 시작하는 손기정의 이야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2전시실. 이곳은 ‘민족정신·진정한 승리’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천지일보 2019.12.13

손기정이 대회 후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베를린 교포 안봉근의 집에 초대받아 난생 처음으로 태극기를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애니메이션, 신문에서 일장기를 고의적으로 지워 발행해 민족의 가슴을 울렸던 ‘일장기 말소사건’, 1947년 지도자로서 제2의 황금기를 시작하는 손기정의 이야기, 베를린올림픽 당시 일본 선수단에 의해 넘겨진 청동투구를 다시 되찾게 된 사연, 청동투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제2전시실의 끝에는 달리는 손기정 선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공간이 있어 기념사진도 남길 수 있다. 1층 전시공간의 마지막인 영상실에서는 손기정의 자서전적 이야기에 모티브를 둔 애니메이션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기 십상인 추운 겨울날, 불굴의 의지로 세계를 제패하고 민족의 긍지를 높인 ‘손기정’ 선수의 삶을 따뜻한 손기정기념관에서 체험하며 새로운 도전의식과 꿈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2전시실은 ‘민족정신·진정한 승리’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사진은 손기정이 대회 후 난생 처음으로 태극기를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애니메이션.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제2전시실은 ‘민족정신·진정한 승리’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사진은 손기정이 대회 후 난생 처음으로 태극기를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애니메이션. ⓒ천지일보 2019.12.13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