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에 있는 정전이다. 조선왕조 한양에 제일먼저 건축된 이 궁전은 글자대로 ‘어진정치’를 펼치겠다는 조선왕조 의지가 서린 곳이다. 조선 초 임금들이 이곳에서 정사를 보았으며 선조는 이곳에서 머물다 의주로 피난을 갔다. 

선조가 궁을 떠나자 민심이 불을 지른 곳도 바로 이 곳이다. 임진전쟁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일본군이 한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창덕궁이 화염에 싸여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금이 임금 되지 못하면 민심은 거역하게 된다. 임금이 ‘인정’을 버리면 민초는 분노하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인(仁)은 유가(儒家)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덕목이다. 이상적인 인간형인 군자의 첫 덕목도 인이다. 맹자는 인정(仁政)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군주에게 강력한 도덕률을 강조했다.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했으며, 잔적지인(殘賊之人)’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맹자는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君舟民水)’로 비유 했다. 임금이 인의(仁義)를 버리고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은 임금의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 명종 대 영남에 살았던 남명 조식(南溟 曺植)은 임금이 그를 단성현감에 임명하자 사직소를 올렸다. 당시 조정은 권신 윤원형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을 때였다. 남명은 사직소를 올려 임금에 대들었다. -…(전략)전하 하늘의 뜻은 사라지고, 인심도 떠났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는 주색만 즐기고, 높은 벼슬아치는 오로지 재물만을 늘리려 하여 물고기의 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데도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낮에는 하늘을 바라보며 슬퍼 울음을 억누르고 밤에는 천장만을 쳐다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하략)-

효종 때 미수 허목(眉叟 許穆)은 글씨로도 유명했던 분이다. 우암 송시열과도 대결하며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 외골수였다. 임금이 그에게 관직을 제수하자 사직소를 올리며 거부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폐단을 개혁하라고 간곡히 아뢴다. 

-(전략)…능력도 없으면서 벼슬을 받는 것은 이른바 명성을 탐내는 것이고 얻어서는 안 될 것을 얻는 것은 이른바 이로움을 탐하는 것인데, 이는 염치를 조금 아는 시골 사람이라도 피하는 것입니다. 덕을 닦는 데에는 허물을 고치는 것 만한 것이 없고, 백성을 보호하는 데에는 선정(善政)만한 것이 없습니다. 폐단을 개혁하고 다시 교화를 펴시려면 반드시 성상부터 몸소 실천하셔서 온갖 정사를 시행하시는 데에까지 미치도록 해야 할 것인데, 반드시 하기 어려운 것을 가려 먼저 실행하시고 사사로운 마음에 얽매이거나 인색한 바가 없게 하셔서 일반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성인의 일이다’라고 말하게 해야 합니다.(하략)- 

지금 문재인 정부는 ‘어진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청와대 측근들은 과연 공정한 자세와 도덕률을 가지고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가. 온통 구린 냄새가 나는 비리의 복마전은 아닌가. 남명의 책망대로 ‘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데도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위선적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국 전 장관에 이어 유재수 전 청와대 비서관의 비리문제가 청와대를 흔들고 있다. 그의 탈법을 조국 윗선에서 덮으려 했다면 이는 중대한 문제다. 지난해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김기현 전 울산 시장에 대한 경찰 표적수사에 대한 청와대 개입의혹은 태풍의 눈이 될 공산이 크다. 

청와대 앞에서는 야당대표에 이어 여성 최고위원과 의원이 영하의 날씨 속에서 릴레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야당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면 어진 정치 ‘인정’이 아니다. 민심의 분노를 외면하면 그 결과가 불행해 진다는 것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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