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치솟은 탑평리 칠층석탑

남한강과 조각 작품 보며 명상

충주 고구려비, 연호 판독 결과 나와

 

관아공원 있는 낙후된 골목길

낡은 건물 특징 살려 감성 자극

충주 고구려비는 우리나라 유일한 고구려 석비라는 점에서 원래부터 가치가 컸지만 최근 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연호 판독 결과가 나와 더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앞 삼족오 조형물(왼쪽)과 고구려비. ⓒ천지일보 2019.11.28
충주 고구려비는 우리나라 유일한 고구려 석비라는 점에서 원래부터 가치가 컸지만 최근 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연호 판독 결과가 나와 더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충주 고구려비전시관 앞 삼족오 조형물(왼쪽)과 고구려비. ⓒ천지일보 2019.11.28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추워진 날씨로 활동량이 줄어드는 계절이다. 자칫하다간 생각만 많아져 머릿속만 복잡한 채 어영부영 한해 끝자락을 보내기 쉽다. 남은 한 달을 잘 보내기 위해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을 비우고 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추운 날씨에 큰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다녀올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충북 충주다.

묵묵히 흘러가는 모습이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는 ‘남한강과 달천강’,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최근 또 다른 광개토왕비일 가능성이 제기돼 학계의 이슈가 된 국보 제205호 ‘충주 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까지. 수려한 자연경관과 흘러가는 역사를 마주하고 있으면 옹졸한 마음과 좁은 시야가 넓어지는 것만 같다. 일정의 끝 순서로 이색 카페에 들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어느새 남은 한 달을 알차게 보낼 힘이 생긴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천지일보 2019.11.28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천지일보 2019.11.28

◆하늘로 치솟은 중앙탑

가장 먼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중앙탑)을 보기 위해 중앙탑사적공원으로 향했다. 날씨 운도 따라줘 파란 하늘을 마주한 석탑이 더 한눈에 들어왔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이 탑은 높이가 12.95m인데, 언덕 위에 있어 더 높아 보인다.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지는 모양새로 안정감은 덜하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석탑이 꽤 웅장한 느낌을 준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당시 지리적으로 중앙에 세워졌다고 해서 중앙탑으로 불린다. 전설도 있다. 신라 제38대 임금 원성왕이 국토의 중앙을 알아보기 위해 건장한 사람을 영토의 남과 북의 끝에서 여러차례 동시에 출발시켜보았는데 그때마다 이 곳 탑평리에서 만나게 돼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통일신라시대 옛 중원경이었던 충주지역에 왕기를 누르기 위해 석탑을 건립했다는 설도 있다.

계단을 통해 탑을 더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탑이 있는 언덕에 오르면 남한강과 소나무, 너른 잔디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때 삼국시대의 격전지였던 중원지역임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은 평온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공원에는 탑뿐만 아니라 ‘문화재와 호반 예술의 만남’이라는 테마의 조각 작품 26점도 만나볼 수 있다. 김태덕 작가의 ‘명상’ 조각 작품은 자연과 거스를 수 없는 역사 속에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귀는 활짝 열어둔 채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이 얼굴 조각상은 주름까지 세밀하게 표현돼 한번쯤 멈춰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① ② 충주 관아골에 있는 골목과 카페 ‘세상상회’. 이 카페는 적산가옥, 마당, 1970년대 양옥이 어우러진 카페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③ ④ 중앙탑공원에서 입어볼 수 있는 다양한 의상들과 의상대여소 풍경 ⑤ 메밀막국수와 메밀후라이드치킨.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메밀반죽으로 튀긴 치킨은 더 고소하고, 느끼하지 않아 막국수와 잘 어울린다.  ⑥ 카페 ‘세상상회’ 메뉴들. 창문이 옛스럽고 정겹다. ⓒ천지일보 2019.11.28
① ② 충주 관아골에 있는 골목과 카페 ‘세상상회’. 이 카페는 적산가옥, 마당, 1970년대 양옥이 어우러진 카페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③ ④ 중앙탑공원에서 입어볼 수 있는 다양한 의상들과 의상대여소 풍경 ⑤ 메밀막국수와 메밀후라이드치킨.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메밀반죽으로 튀긴 치킨은 더 고소하고, 느끼하지 않아 막국수와 잘 어울린다. ⑥ 카페 ‘세상상회’ 메뉴들. 창문이 옛스럽고 정겹다. ⓒ천지일보 2019.11.28

◆남한강을 배경으로 즐기는 의상체험

중앙탑공원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니 허기가 졌다. 오랜 지인의 추천으로 이른바 `치킨 막국수’ 거리로 향했다. 메밀 막국수와 메밀치킨이 유명한 이유를 물어보니 주변 일대가 메밀밭으로 유명하단다. 치킨과 막국수는 어떤 조합일까. 메밀로 치킨도 튀기고 면도 뽑는다는데 치킨과 막국수가 그렇게 조화로울지 몰랐다. 특히 치킨은 메밀을 첨가한 반죽을 입혀 얇게 튀겨져 많이 먹어도 느끼하지 않고 막국수와 잘 어울렸다.

중앙탑공원 주변에서 이렇게 식사를 했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영수증을 챙겨 공원 내 의상대여소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남한강과 중앙탑 등을 배경으로 이색적인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의상대여소에는 아동복부터 공주옷, 근대옷, 한복까지 다양한 의상과 가방, 모자 등 소품을 구비하고 있다. 영수증을 보여주면 3000원인 대여비를 내지 않고도 옷을 빌릴 수 있다. 2시간까지 공원 내에서 체험 가능하다.

◆연호 판독으로 가치 더 높아진 충주 고구려비

충주에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지만 충주 고구려비는 특히 다시 한 번 보러갈 것을 추천한다. 최근 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연호가 판독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학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기 때문.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이 고구려비에서 ‘영락칠년(永樂七年)’이라는 글자를 판독했다고 밝혔는데 ‘영락’은 광개토왕의 연호다.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이 판독 결과에 따라 장수왕이나 문자왕때 세워진 비가 아니라 또 다른 광개토왕비로도 가능성이 열렸다.

중앙탑 인근에서 자동차로 10~15분 남짓 이동하면 고구려비가 전시된 고구려비전시관이 나온다. 가장 먼저 삼족오 조형물이 방문객을 반긴다. 삼족오는 태양에 산다는 전설의 새로 고구려의 상징물이다. 고구려비가 있는 전시관 벽면에는 벽화를 재현한 움직이는 그림 등이 설명과 함께 잘 표현돼 있어 한바퀴 둘러보고 나면 고구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전시관 중앙으로 가면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의 높이 3분의 1정도 되는 고구려비(높이 203㎝)가 눈에 들어온다. 네면에 글이 새겨진 사면비인 고구려비에서 최근 판독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부분을 바라봤다. 판독됐다는 글자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연구결과 때문에라도 더 의미 있게 느껴진 고구려비였다.

◆충주 관아공원 골목서 마시는 커피 한 잔

다양한 문화유산을 접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때쯤 충주 관아공원으로 향했다. 관아공원은 조선시대 충주목 관아터에 조성한 공원으로, 옛 관아건물이 남아 있다. 주변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낡은 건물들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작업공간이나 카페, 음식점들이 있어 구경하고 휴식을 취하기 좋다. 이곳 관아공원 앞 골목을 가만히 걷거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보면 ‘뉴트로(복고를 새롭게 즐긴다는 의미)’ 감성이 느껴진다. 낮에 봤던 역사문화 가득한 충주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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