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오두산성(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안개가 자욱하여 희미하게 보인다. 도미부인이 앞을 못 보는 남편을 만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오두산성(통일 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안개가 자욱하여 희미하게 보인다. 도미부인이 앞을 못 보는 남편을 만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대 순결한 부부애 도미부인

<삼국사기> 열전 기록을 보면 도미(都彌)는 고대 백제 사람이었다. 그는 왕경인 위례성에 살았으며 여종을 거느린 것을 보면 귀족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너무 아름다웠다. ‘미인은 박명하다’고 했나. 도미부인은 그 미모로 큰 환난을 당한다.

개루왕이 부인을 보고 흑심이 생겨 궁중으로 불러들여 온갖 회유와 강압을 가했다. 그러나 도미부인은 끝내 어명을 거역하고 정절을 지킨다. 왕은 도미의 눈을 빼 앞을 보지 못하게 하고 먼 곳으로 추방했다.

궁중에 남은 부인은 왕의 강압을 기지로 모면하고 탈출한다. 그리고 배를 타고 남편을 찾아 떠났다. 남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남편이 천성도(泉城島)에 있다고 했다. ‘천성도’. 부인은 남편이 있는 것으로 길을 떠났다. 결국 부인은 천성도에서 눈먼 남편을 찾아 기쁜 눈물을 흘렸다. ‘당신이 살아 있어 감사하다’ 도미부인은 남편을 이끌고 고구려로 도망하여 평생을 살았다. 그녀가 백제왕에게 몸을 허락했다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부인은 오직 남편 하나만을 사랑하여 그를 쫓아갔다. 남편이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야 할 남편을 찾아갔다.

십여 년 전 중국의 거장 첸카이거(陈凯歌) 감독이 이 소재에 감동, 영화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도중에 좌절했지만 중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줄 만큼 아름다운 소재다. 조선 세종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간행하면서 제일 첫 장에 <도미설화>를 넣도록 했다.

도미부인이 남편을 찾아간 ‘천성도’는 지금의 어디일까. 천성도 문제도 백제 마지막 항전지인 주류성(周留城)의 예와 같이 백가쟁명하다. 충남 보령, 서울 강동구, 경기도 하남시가 연관임을 주장하고 있고, 임진강 하류인 파주시 오두산성 일대를 천성도로 비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도미부인 설화에 열정을 보인 곳은 보령시다. 보령시는 백제 도미부인의 사당까지 만들어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천성(泉城)을 한강 하류 쪽으로 비정,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이곳은 신라가 대당 투쟁을 하면서 크게 전승을 거둔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화군 하늘재와 파주시 오두산성 쪽을 주목해왔다. 강화 ‘하늘재’는 바로 천성(天城)의 우리말이다. 오두산성은 그 지명이 천성과 가깝다. 또 하북 위례성에서 배를 타고 가면 최종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임진강을 건너 고구려로 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도미부인 영정
도미부인 영정

‘도미부인’ 삼국사기 열전 기록

<삼국사기> 권48 열전 제 8 도미(都彌)조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都彌. 百濟人也. 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其妻美麗, 亦有節行, 爲時人所稱. 蓋婁王 聞之, 召都彌 與語曰 ‘凡婦人之德, 雖以貞潔爲先, 若在幽昏無人之處, 誘之以巧言, 則能不動心者, 鮮矣乎!’ 對曰 ‘人之情, 不可測也, 而若臣之妻者, 雖死 無貳者也’ 王欲試之, 留 都彌以事, 使一 近臣, 假王衣服馬從, 夜抵其家, 使人先報王來. 謂其婦曰 ‘我久聞爾好, 與 都彌 博得之. 來日入爾爲宮人, 自此後, 爾身吾所有也’ 遂將亂之. 婦曰 ‘國王無妄語, 吾敢不順 請大王先人入室 吾更衣乃進. 退而雜飾一婢子薦之. 王後知見欺大怒, 誣都 彌以罪, 矐其兩眸子, 使人牽出之, 置小船 泛之河上. 遂引其婦, 强欲淫之. 婦曰 ’ 今良人已失, 單獨一身, 不能自持. 況爲王御, 豈敢相違 今以月經, 渾身汚穢, 請俟 他日薰浴而後來. 王信而許之. 婦便逃至江口, 不能渡, 呼天慟哭, 忽見孤舟 隨波而至, 乘至‘泉城島’, 遇其夫未死 掘草根以喫, 遂與同舟, 至 高句麗 蒜山 之下. 麗人哀之, 丏以衣食. 遂苟活, 終於羈旅.

이 기록에서 재미난 것은 개로왕과 도미의 게임이다. 왕은 도미를 불러 이렇게 의중을 떠 본다. “대체로 부인의 덕은 정결을 으뜸으로 치지만 만일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달콤한 말로 유혹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도미가 대답하였다.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저의 아내와 같은 여자는 죽어도 변함이 없을 사람입니다.”

왕이 이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일을 핑계로 도미를 붙잡아 두고 가까운 신하 한 사람으로 하여금 왕의 의복과 말과 종자를 가장하여 밤에 도미의 집으로 가게 했다. 가짜 왕이 부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래전부터 네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하여 이겼다. 내일 너를 데려다가 궁인으로 삼을 것이니 지금부터 너의 몸은 내 것”이라고 하였다. 가짜 왕이 덤벼들려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국왕은 망언을 하지 않을 것이니 제가 어찌 감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소서. 제가 옷을 갈아 입고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물러나와 여종 하나를 단장시켜 모시게 하였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워서 그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사람을 시켜 끌어내어 조그마한 배에 싣고 강 위에 띄워 보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부인을 끌어 들여 억지로 간음하려 하니 부인이 말했다. “이제 이미 남편을 잃어 혼자 몸으로는 스스로를 부지할 수 없사온데 더구나 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제가 월경으로 온 몸이 더러우니 다른 날 목욕을 깨끗이 한 뒤에 오겠습니다.”

왕이 이를 믿고 허락하였다. 그녀는 곧 도망하여 강 어구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널 수가 없어서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배 한 척이 물결을 따라 다가오자, 그녀는 그 배를 타고 천성도에 이르러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아직 죽지 않고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蒜山) 밑에 이르렀다. 이곳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옷과 밥을 주었으며 거기에서 일생을 마쳤다.

오두산성에서 내려다 본 전경
오두산성에서 내려다 본 전경

개루왕인가 개로왕인가

도미를 겁간하려 했던 개루왕(蓋婁王)은 백제의 제4대 왕(재위 128~166)이다. 그런데 왕은 성격이 공손하고 몸가짐이 단정했다고 돼 있다.

<삼국사기> 권 제22 개루왕조 -蓋婁王 己婁王子. 性恭順有操行. 己婁王在 位五十二年 薨 卽位. 四年 夏四月 王獵漢山. 五年 春 二月 築 北漢山城.

128(기루왕 52)년 겨울 아버지 기루왕이 죽은 뒤에 왕위를 이었고, 132(개루왕 5)년 북한산성을 쌓았다는 내용이다. 개루왕은 166(즉위 39)년에 붕어했으며, 맏아들인 초고왕(肖古王, 재위 166~214)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일설에는 도미부인과 관련된 왕을 개루왕이 아닌 훨씬 후대의 ‘개로왕(455〜475)’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도 개로왕의 이름을 근개로(近蓋鹵)로도 표기하고 있다. 개로왕은 한강백제 위례성에서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불러 아차산성 아래서 참수당한 비운의 왕이다.

개로왕은 바둑을 즐기고 풍류를 즐긴 왕이었다.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궁성을 쌓고 선조 왕들의 묘곽을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시기 중요한 직책에 있던 장군들이 고구려로 망명했다. 이들은 왜 고구려로 도망을 갔을까.

<삼국사기>에는 죄를 짓고 고구려로 망명했다고 돼 있으나 개로왕에게 원한을 지은 이들이다. 나중에 장수왕의 침공 시 앞장을 섰던 재증걸루(再曾桀婁), 고이만년(古爾萬年) 등은 사로잡은 개로왕에게 침을 세 번이나 뱉는 모욕적인 행위를 한다. 어떤 원한이 있었기에 자신이 모시고 있던 왕에게 세 번이나 침을 뱉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을까.

공손하고 몸가짐이 단정했다는 개루왕에 비해 개로왕은 호방하고 여색을 밝히는 왕이었지 않았을까. 재증걸루 등 백제 장수들이 극도의 원한을 품고 고구려로 망명하여 침공의 선두에서 길잡이를 했던 것을 보면 이들의 분노를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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