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추존된 장조(사도세자, 장헌세자)와 그의 아내 비 현경왕후(혜경궁 홍씨)를 모신 융릉의 전경 ⓒ천지일보 2019.11.22
왕으로 추존된 장조(사도세자, 장헌세자)와 그의 아내 비 현경왕후(혜경궁 홍씨)를 모신 융릉의 전경 ⓒ천지일보 2019.11.22

세계유산 화성 융릉과 건릉

사색하며 걷는 힐링의 명소

아이들 역사 교육의 산 현장

 

서울역서 불과 1시간 거리

공영주차장 무료주차 이용

1~2시간 산책하기 좋은 곳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가을이 무르익고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요즘, 아이들과 걷기 좋은 곳이 있다. 다소 쌀쌀한 가을 날씨이지만 따뜻한 햇볕도 들고, 단풍으로 물든 자연의 경치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그곳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조선왕릉 ‘융릉과 건릉’이다. 이곳은 2009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융릉은 왕으로 추존된 장조(사도세자, 장헌세자)와 그의 아내 비 현경왕후(혜경궁 홍씨)의 능이고, 건릉은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와 효의황후의 능이다. 융릉의 이름은 수은묘, 영우원, 현륭원을 거쳐 현재 융릉으로 불리게 됐는데, 융릉은 조선왕릉 가운데 능(陵), 원(園), 묘(墓)라는 명칭을 모두 거친 유일한 능이다.

조선왕릉 ‘융릉과 건릉’은 2009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천지일보 2019.11.22
조선왕릉 ‘융릉과 건릉’은 2009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천지일보 2019.11.22

◆단풍에 물든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사 연발

서울역에서 불과 1시간가량 떨어진 이곳은 자연의 경치를 즐기면서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 공영주차장이 크게 조성돼 있어 별다른 고민 없이 무료로 주차할 수 있어 편리했다. 입장료도 여느 조선왕릉과 같이 저렴하다. 단돈 천 원에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입구에는 점자 안내도와 음성안내 버튼도 있는데 눌러보니 잘 작동됐다.

토요일(23일) 오전이어서인지 입장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은 아니었다. 덕분에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사색에 잠겨 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관람객 대부분은 한국인이었고, 간혹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 단위와 어르신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다.

‘융릉과 건릉 역사문화관’을 찾은 관람객이 정조대왕과 아버지 사도세자에 관한 사료를 읽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융릉과 건릉 역사문화관’을 찾은 관람객이 정조대왕과 아버지 사도세자에 관한 사료를 읽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입장권을 끊어 주변을 둘러보니 키가 큰 오래된 나무가 많고, 길이 잘 정리돼 있어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진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왔다는 박준혁(28)씨는 “화성에 살지만 융릉과 건릉은 처음 온다”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깐 단풍이 아름답고, 문화재청에서 관리도 잘돼 있다고 평이 좋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길을 따라 걷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곳은 ‘융릉과 건릉 역사문화관’이었다. 융릉과 건릉 역사문화관에는 조선왕릉의 계보와 과학적 기술로 만든 수원 화성의 흔적, 그리고 축조 방법을 설명한 화성성역의궤 등에 대한 내용과 근처에 용주사를 중건해 무덤을 지키는 사찰로 정한 이야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수원 화성과 용주사, 융·건릉에 얽힌 이야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인 셈이다.

‘융릉과 건릉 역사문화관’ 맞은편에는 한옥 모양의 제사를 지내는 준비를 하는 재실이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융릉과 건릉 역사문화관’ 맞은편에는 한옥 모양의 제사를 지내는 준비를 하는 재실이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역사문화관 내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정조와 세도세자와의 얽힌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역사문화관을 나오면 바로 맞은편에 한 채의 한옥을 볼 수 있다. 야외 주창에서부터 보이던 이 한옥은 왕릉의 재실이다. 재실에는 오래된 향나무와 천연기념물 (제504호) 개비자나무가 있다.

재실을 잠깐 둘러보고 입구를 따라 완만한 경사를 오르니 울창한 숲으로 이어졌다. 숲을 천천히 거닐다가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거나 도토리를 줍는 모습도 보였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하얀 나비가 숲속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는데, 신비롭게 느껴졌다.

관람객들이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산책로를 걷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관람객들이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산책로를 걷고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위한 정조의 효심 엿보여

단풍을 즐기면 천천히 20여 분쯤 걸으니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이 나왔다. 도착할 때만 해도 약간 궂은 날씨였으나, 어느새 햇볕이 내리쬐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융릉에 도달하기 전에 능역과 속세를 구분하는 ‘금천교’라는 돌다리와 풍수지리상 목적으로 판 ‘곤신지’라는 연못을 지나쳤다. 곤신지 연못에는 다양한 색깔을 띤 잉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금천교를 지나면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붉은 기둥의 문인 ‘홍살문’이 보인다.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인 1790년에 조성된 원형 연못 곤신지. 연못 앞으로 다가가면 잉어들이 모여든다. ⓒ천지일보 2019.11.22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인 1790년에 조성된 원형 연못 곤신지. 연못 앞으로 다가가면 잉어들이 모여든다. ⓒ천지일보 2019.11.22

홍살문에 서서 앞을 보면 정면으로 산릉제례 때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산릉제례 때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이 있고, 우측으로는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는 비각이 있다. 비각에는 2개의 비가 남아있는데, 융릉에도 건릉에도 각각 있다.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으로 가는 길에는 향로와 어로가 있는데, 향로는 돌아가신 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이고, 어로는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이라고 한다. 바닥에 놓은 안내문에 ‘이 길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어 어로를 걸어서 정자각에 도달해 그 안을 둘러봤다. 정자각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과 관련한 모형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산릉제례 때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 정자각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과 관련한 모형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산릉제례 때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 정자각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것과 관련한 모형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9.11.22

융릉은 울타리가 쳐 있어서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다. 이는 건릉도 마찬가지다. 울타리에서 봉분까지 약 50m 떨어져 있다.

정조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효성스러운 왕으로, 뒤주 속에 갇혀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 사도세자를 무덤이나마 좋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융릉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융릉은 정조의 효성으로 빚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릉인 셈이다.

처음에는 정조가 당시 양주에 있던 아버지 묘(영우원)를 이곳으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했으나 고종 때 황제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바뀌었다. 또한 정조의 효심으로 수원 화성을 지었는데, 그곳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왕으로 추존된 장조(사도세자, 장헌세자)와 그의 아내 비 현경왕후(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 융·건릉 모두 울타리가 쳐 있어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다. ⓒ천지일보 2019.11.22
왕으로 추존된 장조(사도세자, 장헌세자)와 그의 아내 비 현경왕후(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 융·건릉 모두 울타리가 쳐 있어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다. ⓒ천지일보 2019.11.22

건릉으로 가는 길은 융릉으로 온 길을 되짚어 나가다 숲 사이로 얕은 산을 넘어가도 되고, 입구까지 이동해서 이정표를 따라가도 된다. 육릉에서 건릉으로 이동하면서 커다란 소나무가 길 따라 심겨 있는 것을 보면서 정조의 효심을 더 느낄 수 있었다. 건릉은 육릉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에서 가족과 함께 온 곽성환(48)씨는 “‘왕에게 가다 스탬프 투어’를 하고 있다. 스탬프를 15개 찍으면 ‘달빛기획 궁 야간 투어’를 하게 해준다”라면서 “꼭 그것이어서가 아니라 조선왕릉 투어를 다니면서 아이에게 역사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왕릉 융릉과 건릉’은 가족과 함께 1시간 정도 쉬엄쉬엄 둘러보며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늦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룬 이곳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와 효의황후의 능인 건릉. 건릉은 융릉보다 능의 형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천지일보 2019.11.22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와 효의황후의 능인 건릉. 건릉은 융릉보다 능의 형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천지일보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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