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전 동의대 외래교수

ⓒ천지일보 2019.11.17

부산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 해안길을 달리다 보면 영덕 지나 울진 못 가서 고래불이라는 곳이 있다. 동해안의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이 끊임없이 펼쳐진 명사 20리 해수욕장이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오십천이 해안 쪽으로 바짝 솟은 상대산의 허리를 휘돌아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산과 강 그리고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천하절경을 이뤘다.

그런데 이곳의 독특한 이름 고래불의 유래가 재미있다. 고려 시대의 대학자이신 목은 이색 선생께서 유년시절 고향인 이곳 상대산에 올라 푸른 바다를 즐기곤 했는데 그때 바다에서 한가로이 노닐던 고래들의 물 뿜는 모습을 보고서는 고래불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때는 정말 동해가 ‘물반 고래반’ 이었단다.

햇살 좋은 봄에 언덕에 앉아 맑고 푸른 바다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고래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상상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지지 않은가.

고래는 늘 신비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래의 생태와 진화 과정에 대한 정보가 꽤 풍성해졌다.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이 동물이 그물에 걸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을 물어뜯는가 하면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여러 고래가 둘러싸고 거의 들어 나르듯 하는 모습이 고래학자들의 눈에 여러 번 관찰되기도 했단다.

고래는 비록 물속에 살지만 잘 알고 있듯이 엄연히 폐로 숨을 쉬는 포유류이다. 그래서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면 무엇보다도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 없게 되므로 쉽사리 목숨을 잃는다. 범고래들이 어린 향유고래를 사냥할 때도 주로 이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다. 즉 어린 고래가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지 못하도록 빙빙 돌며 포위 공격을 하여 결국 물속에서 익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래는 어떻게 해서 물속에 살면서도 물속에서는 숨을 못 쉬는 동물이 되었을까?

진화생물학의 이론에 따르면 태초에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다. 오랜 진화의 시간을 거쳐 바다에 살던 생물들 중 일부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육지로 상륙했다.

물에서 뭍으로의 이동은 호흡에서 생식까지, 삶의 모든 면을 크게 재설계해야 하는 대역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철저하게 육상화 되었던 동물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육지 환경에 맞추어 힘들게 재편성했던 도구들을 다 버리고서 말이다.

바다표범과 바다사자는 절반만 돌아갔지만 고래는 육상생물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머나먼 선조들처럼 완벽한 수생동물로 돌아갔다. 이들은 심지어 번식할 때조차도 물가에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지상에서의 삶의 흔적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아가미가 아니라 육상포유류처럼 여전히 폐로 호흡했다. 물론 코끝의 콧구멍 두 개로 호흡하는 대신, 머리 꼭대기에 열린 콧구멍 하나로 호흡한다. 덕분에 아주 조금만 물 위로 올라와도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몸에는 속속들이 뭍에서 다시 바다로 돌아간 육상포유류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사실 외모만 놓고 보면 고래의 한 종류인 돌고래나 범고래의 외모는 여러 종류의 큰 어류들과 닮았다. 농어목인 만새기는 실제로 가끔 ‘돌고래(Common dolphinfish)’라고 불린다. 범고래 또한 크기나 생김새, 그리고 무시무시한 바다의 포식자라는 점에서 백상아리와 닮았으며 둘 다 유선형 몸통에 비슷한 수영 실력을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만새기나 백상아리는 다른 물고기들처럼 꼬리를 옆으로 흔드는 반면에 돌고래나 범고래는 꼬리를 상하로 흔든다. 고래와 돌고래의 선조들은 땅에 완전히 적응한 포유류였다. 틀림없이 척추를 위아래로 굽혔다 폈다 하면서 초원과 사막과 툰드라를 달렸을 것이다.

그들은 바다로 돌아간 뒤에도 선조의 척추 상하 운동을 간직했다. 뱀이 땅에서 ‘헤엄’ 친다면 돌고래는 바다에서 ‘달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돌고래의 꼬리가 겉으로는 상어나 만새기의 갈라진 꼬리와 닮았는지 몰라도, 고래의 꼬리는 수평으로 붙어 있는 반면에 어류의 꼬리는 수직으로 서 있다.

분자유전학적 증거를 볼 때, 고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은 하마고 다음은 돼지, 다음은 반추동물이란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분자적 증거를 볼 때 하마는 다른 우제류(돼지나 반추동물들)보다는 고래와 더 가깝다는 것이다.

고래가 왜 다시 그토록 고생하면서 일구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바다로 돌아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머나먼 선조 어류들이 원래 그 반대 방향으로 갔을 때처럼 고래의 선조들이 바다로 돌아간 것도 대역사였을 것이다. 공중으로 이륙하거나 풍선을 띄우는 것과 좀 비슷하지 않았을까? 중력의 무거운 짐을 벗고 육지에 내렸던 닻을 잘라 둥둥 뜨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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