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4대 여류시인인 이옥봉이 '소동파 시집'에 육필로 쓴 한시. 소동파 시집은 이옥봉이 공부했던 책이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 위원)ⓒ천지일보 2019.10.31
조선 4대 여류시인인 이옥봉이 '소동파 시집'에 육필로 쓴 한시. 소동파 시집은 이옥봉이 공부했던 책이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 위원)ⓒ천지일보 2019.10.31

공부하던 소동파 시집 말미에 부군 그리움 적어

육필 시는 첫 발견… 세종 때 간행한 시집도 문화재급

조선 4대 여류시인으로 시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이옥봉(李玉峯)의 육필 시로 보이는 한시 1수가 발견됐다. 이 시는 옥봉이 평소 시를 공부했던 서책인 ‘소동파 시집’ 맨 뒷장에 종서 2행 초서로 썼으며 내용은 부군이 괴산현감으로 부임하자 기뻐하면서도 떨어져 있음을 애석히 생각한 내용이다. 특히 시 왼편에는 붉은 글씨로 이 시가 옥봉이 쓴 것(敬述)이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李娘玉峯 憶其良人趙公援在槐山時作也’

(이낭 옥봉이 괴산에 있는 부군 조원을 생각하며 짓다)

최근 역사연구가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 위원이 발굴한 이육필 시는 제목이 ‘夢魂(몽혼)’이다. 이옥봉 연구를 해 온 한 전문가는 한시의 형태로 보아 옥봉의 시로 보인다고 말하고 옥봉의 진적인가는 서지학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 찾아진 한시를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一相朝日半峯文

天雲江寒木葉傳

西風起自槐灘至

明若龍山妾夢魂

玉峯 敬述

아침나절 쓴 글이 반 봉우리며

차가운 강 하늘을 낙엽이 전 하네

서풍은 불어 임 계신 괴탄에 이르고

기쁜 일이기는 하나 첩에게는 꿈 일세

옥봉이 삼가 쓰다

조선 4대 여류시인인 이옥봉이 '소동파 시집'에 육필로 쓴 한시. 소동파 시집은 이옥봉이 공부했던 책이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 위원)ⓒ천지일보 2019.10.31
조선 4대 여류시인인 이옥봉이 '소동파 시집'에 육필로 쓴 한시. 소동파 시집은 이옥봉이 공부했던 책이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 위원)ⓒ천지일보 2019.10.31

옥봉이 어린 시절부터 한시를 공부한 소동파의 시집은 ‘增刊校正王狀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이며 원나라 때 왕십붕(王十朋)이 찬하고 유진옹(刘辰翁)이 비점(批点)한 서책으로 서지학계는 고려 말 전래 되어 조선 세종 때 목판으로 인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 시집은 21cm X 32cm 표지는 ‘東坡’라 돼 있으며 옥봉의 시가 등재된 시집은 22, 23권 중 23권이다. 이 전위원은 이 책도 세종 대 간행 되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해 문화재급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비극적 여류 시인 옥봉의 생애

현존하는 이옥봉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몽혼(夢魂)’이다.

近來安否問如何 요즈음 안부를 여쭈노니 어떠하신지요

月到紗窓妾恨多 달빛이 창가에 비치니 신첩의 슬픔이 많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만일 꿈 속에서 넋의 발자취가 남는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 돌길이 모래길로 바뀌었을 겁니다.

출간된 ‘이옥봉 몽혼(휴먼앤북 발행.2009.11.30)’에는 ‘사랑하는 부군 조원을 생각하여 단장의 아픔으로 쓴 이 시는 유작 32편 가운데 백미’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옥봉은 허난설헌과 황진이에 버금가는 시인으로 호방할 때는 호방하고 섬세할 때는 섬세했으며, 아름다울 때는 아름답고 슬픔은 찬연하다’고 평한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처럼 가슴 아픈 시를 남겼을까.

실학자 지봉 이수광(芝峰 李睟光 1563~1628)이 지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전 한다.

-승지 조희일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원로대신으로부터 시집 한 권을 받는다. 놀랍게도 이옥봉 시집이었다. 옥봉은 부친 조원의 첩으로 대신이 들려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40여년 전 바닷가에 괴이한 주검이 떠돌아, 사람을 시켜 건져 올리도록 했다. 주검은 종이로 수백 겹 말려 있었고, 안쪽 종이엔 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시가 빼어나 책으로 엮었다. 말미엔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기록이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 위원은 ‘이 기록을 믿지 않은 이들이 많으나 이수광은 바로 전주 이씨 집안으로 옥봉과는 동 시대의 인물이다. 당시 옥봉의 문재는 시중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중국을 다녀온 조원의 아들을 통해 이 비극적인 사연을 들었을 가능이 있다’고 말했다.

옥봉은 선조 때 옥천(沃川) 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했다.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으며 학식과 인품이 곧은 사람인 조원(趙瑗)의 소실(小室)로 들어가기를 결심하였다.

이에 부친 이봉은 친히 조원을 찾아가 딸을 소실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담판하고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趙瑗)의 첩으로 들어간 옥봉은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로 예술적 교류를 나누는가 하면 조원의 친구 윤국형(尹國馨) 또한 지사의 기개가 엿보이는 그녀의 시에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녀가 써준 시 한편이 관가의 사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필화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조원의 화를 사게 되어 결국 친정으로 내쳐졌다. 옥봉은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시는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나란히 실려 있다.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趙正萬)이 남긴 ‘이옥봉행적’에 그녀에 대한 행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 ‘명시종(明詩綜)’,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원시귀(名媛詩歸)’등에 작품이 전하고 있다. 한 권의 시집(詩集)이 있었다고 하나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玉峰集)’ 1권 만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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