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전 동의대 외래교수

ⓒ천지일보 2019.10.28
ⓒ천지일보 2019.10.28

걷기는 인류가 아득한 옛날부터 자동차를 타고 와서 땅 위에 내려서는 중이라고 믿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다수 사람에게 인간이라는 종(種)이 두 개의 발로 시작됐으며 신석기 이래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의 능력이 네안데르탈인들의 그것에 비해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신석기시대 이래 지금까지 인간은 늘 똑같은 몸, 똑같은 육체적 역량, 변화무쌍한 주변 환경과 여건에 대처하는 똑같은 저항력을 갖고 있다.

오만한 오늘의 사회는 그 오만 때문에 호된 벌을 받고 있지만 우리 인간들이 가진 능력은 네안데르탈인들의 그것에 비해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인간들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기 위해 발로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다.

사실 이는 두 발이라는 특징만 제외한다면 네발 동물들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다. 두발이든 네발이든 모든 동물은 어머니 대지의 후손이다. 조류도 예외는 아니다. 창공을 나는 새 역시도 대지에서 탄생하고 잠든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라고 프랑스의 작가 브르통은 말한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호젓한 숲길이나 오솔길을 걸어보라. 약간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과 다리에서 전해져오는 기분 좋은 뻐근함. 그리고 연이어 맺혀오는 이마의 땀방울을 통해 온몸의 세포들이 살아 숨 쉬며 활짝 기지개를 켜는 느낌을 체험할 것이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도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동안, 대개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일체의 물질적 근심·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린 채 숲으로 산으로 들로 한가로이 걷지 않으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걷기에 대한 예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의 시인 바쇼는 오랫동안 세상을 멀리해 은거하다가 떠나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 차오르는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해부터인가, 구름 조각이 바람의 유혹에 못 이기듯 나는 끊임없이 떠도는 생각들에 부대끼게 됐다. 이윽고 지난해 가을에는 강가에 있는 내 오두막에서 해묵은 거미줄을 쓸어버렸다. 여행신이 내 정신을 흔들고 길신들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찢어진 바지를 꿰매고 모자 끈을 고쳐 매고 마쓰시마의 달빛에 마음을 맡긴 채 다른 사람에게 내 거처를 넘겨주었다’

혼자 길을 걸어본 사람은 홀로 걷는 즐거움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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