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한 알

김수희

까치 부리에 쪼인 걸까
비둘기 발톱에 긁힌 걸까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힘껏 향기 뿜는다.

햇살이 간질여도
바람이 흔들어도
꿋꿋이 버티는

빈 가지
모과 한 알

가을이 다 가도록
향긋한 자

[시평]

잎들이 거지반 떨어진 나무에 노랗게 익어가며, 모과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은은한 향기 말고는 별 용도가 없는, 그래서 잘 저미듯이 썰어서 차로 만드는 것 말고는 별 쓸모가 없는 모과. 본래의 이름은 목과(木瓜)로, 나무에서 나는 오이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마치 모가 난 듯 울퉁불퉁한 모습 때문에 모과라고 불리는 듯 생각이 되는 과일이다. 그 울퉁불퉁한 모습에서 풍기는, 참으로 은근한 향기가 자못 뭇사람을 끄는 가을의 정취이기도 하다.

위태롭게 잎들이 다 진 나뭇가지 사이에 매달려 있다가, 때로는 날짐승들이 날아와 상처를 입기도 하고, 때로는 햇살이 와서 앙증맞게 간질이기도 하고, 또는 바람이 다가와 가만히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위태 위태롭게 앙상한 가지에 잘도 버티며 매달려 있는 모과.

잎들도 다 떨어진 빈 가지에 매달려서 이 가을이 다 가도록 향기로운 냄새를, 가을 하늘 멀리까지 은은하게 번져주고 있는 모과. 그 모과에서 비록 울퉁불퉁 그런 모양을 지녔지만, 이 가을을 지키는 가장 향기로운 사람, 그 사람을 떠올린다. 우리네 삶에 향기로운 사람, 이 가을을 견디며 위태롭게 매달려 있으며 세상 어디에고 향기를 보내주는 사람, 그 사람 이 가을 더욱 그리워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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