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후 ‘토속신앙 반대’ 성명
교황청, 강력 비난·수사 의뢰해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 성당에 보관된 원주민 여인 조각상을 보수 가톨릭계 인사들이 훔쳐 폐기하는 일이 발생해 현지 가톨릭계가 시끌시끌하다.

나체의 원주민 임신부가 부풀어 오른 배를 만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조각상은 대지와 농업, 다산을 관장하는 고대 잉카의 여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아마존 시노드를 기념해 원주민들이 가지고 온 여러 상징물 가운데 하나로, 이달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노드 개막 기념행사에서도 선보여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폰티나 성당으로 옮겨져 보관돼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바티칸 성당에서 남미 아마존 지역의 현안을 논의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Synod)가 한창인 가운데 새벽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들이 성베드로 광장 인근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폰티나 성당’에 몰래 들어가 나무로 제작된 원주민 여인 조각상 4개를 들고 나왔다.

범인 가운데 한 명은 이 전체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공개했다. 영상에 따르면 이들은 이후 성베드로 광장과 가까운 산탄젤로 다리까지 걸어가 훔친 조각상을 난간에 놓고 하나씩 밀어 테베레강 아래로 떨어뜨렸다.

사건 이후 보수 가톨릭계 웹사이트인 라이프사이트 뉴스에는 가톨릭 근본주의 성향의 일부 활동가가 발표한 성명이 게재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절도의 배후라며 “토속신앙은 용인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또 “가톨릭교회가 내부 구성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이를 용납할 수 없으며 더는 참지 않을 것이다. 당장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일에 대해 교황청은 깊은 유감의 뜻을 표했다. 교황청 홍보 책임자인 파올로 루피니는 “해당 조각상은 생명과 비옥함, 대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누차 얘기해왔다”면서 가해자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바티칸 뉴스를 총괄하는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도 “전통과 교리를 명분으로 모성과 생명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상징물을 경멸적으로 없애버렸다”고 비판했다.

교황청은 이번 사건의 범인을 밝혀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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