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천지일보 편집부] 오늘 2019년 10월 16일은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이다.

부마민주항쟁이란?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학생과 시민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반대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난 민중시위.
 

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金泳三)이 총재로 당선.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됐다.
 

8월 11일

YH사건.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운영 정상화와 근로자 생존권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으로, 경찰이 노동자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양이 사망. 이는 부마민중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10월 4일

YH사건 등으로 박정희 정권과 정면대결을 벌이던 김영삼 총재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아 의원직을 박탈했다. 이로 인해 유신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은 더욱 고조됐고, 부마항쟁을 촉발시켰다.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 사퇴서 제출.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돼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지역 민심이 크게 요동쳤다.
 

10월 15일

부산대학교에서 민주선언문 배포. 16일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 시민들이 합세해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전개됐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김영삼에 대한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정권 타도 등을 외쳤고, 18일과 19일 마산‧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10월 18일

0시 부산에 비상계엄령 선포. 1,058명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으며,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衛戍令)을 발동.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부마항쟁시위는 정부의 군사작전을 통해 진압되었으나, 유신독재 체제 종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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