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진행된 신천지 말씀대성회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이만희 총회장. ⓒ천지일보 DB
2011년 9월 2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진행된 신천지 말씀대성회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이만희 총회장. ⓒ천지일보 DB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4일 서울을 시작으로 6개 도시에서 직접 ‘말씀대성회’ 강사로 나선다는 소식에 교계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이만희 총회장’이 직강에 나서는 신천지 말씀대성회는 2013년 이후 6년만인 가운데 이 총회장이 이번 말씀대성회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지난 2013년에도 이 총회장이 나선 말씀대성회는 포털 사이트 실검 1위에 올랐고, 신천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당시 홈페이지가 다운 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이 총회장의 강연에 이처럼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뭘까. 한국에 기독교가 유입된 이후 수많은 교단이 흥망성쇠를 거듭해왔지만 이 총회장처럼 기성 교단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견제 대상이 된 종교 지도자는 없었다. 특히 이 총회장의 특이한 이력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성경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교단으로서는 경계의 대상이 됐다.

이만희 총회장은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9대손으로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석으로 기도하던 조부를 따라 어려서부터 기도하며 자랐다. 조부가 ‘며느리 배에 빛이 가득 비추는 태몽’을 꾼 후 ‘완전한 빛’을 뜻하는 만희(萬熙)라 출생 전에 지어둔 이름이 그의 본명이 됐다.

이 총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어느 날 큰 별을 삼일 연속 본 후에 알 수 없는 핍박이 시작됐다. 그는 19살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최전방 보병부대(7사단) 하사로 제대하기까지 그는 수많은 전우들의 참담한 죽음을 봤다. 당시의 참혹한 경험은 그가 세계평화운동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핍박이 너무 거세 죽으려고 산에 올랐다가 하늘에서 온 영인(靈人)을 만나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면서 본격적인 신앙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후 신흥교단이던 ‘장막성전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 과천에 있는 장막성전으로 가 몇 년간 역군으로 봉사했다. 장막성전의 부패를 보고 지적했다가 그를 죽이려는 무리들이 있어 고향으로 귀향한다.

7년 만에 다시 영인을 만나 지시를 받고 장막성전으로 돌아가 회개를 촉구하다 숱한 핍박을 당했다. 이 총회장은 1980년 초 요한계시록이 성취되는 것과 계시록 10장에 기록된 열린 책을 받는 체험을 한다. 이후 생각하는 것이 옛적과 달라졌고 성경을 통달하게 됐으며, 사람의 생각이 아닌 신의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계시록에 기록된 교회들을 위해 보냄 받은 대언의 사자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의 이런 주장으로 인해 기성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 비난 받고 있지만 “하늘이 보여주고 들려주신 것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기에 하는 것”이라면서 “사람을 보지 말고 말씀을 듣고 판단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총회장에 따르면 당시 장막성전은 요한계시록의 사건이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부패해가는 장막성전의 목자와 성도들을 목격하고 하늘의 지시를 받아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다 숱한 폭행과 폭언을 당하기도 했다.

장막성전이 장로교회로 간판을 바꾸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그곳을 떠난 이 총회장은 그를 따라 나선 사람들과 삼년여간 모임 장소도 없이 들과 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후 1984년 3월 14일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창립일로 선포했다. 이것이 신천지예수교회의 시작이었다. 이 총회장은 성경대로 추수해 인쳐서  12지파를 창립했고, 신천지예수교회는 해마다 급성장해 종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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