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김금분(1955 ~  )

사는 게 어줍짢고 매슥거릴 때
매운 고추장 한 숟가락 썩썩 비벼보아라
진수성찬 다 물리고 새빨갛게 물들여
혓바닥을 점령하라
땡볕에 약이 오른 고추들
툭툭 꺾어서 듬뿍 찍어 먹어라
눈물 콧물 다 쏟아라
혀를 내두르거나 아무 바닥에나 문질러대고 싶거든
쭉 빼서 길게 늘어뜨려라
헤헤 휘저어라, 자루처럼
침이 흐르는 낭떠러지를 지나
광활한 바람을 맞받아치게 하라
덮썩 깨물었다가 매운 맛을 보고야 마는
모든 끝이 뾰족한 이유를 적어라
만만한 맛이 어디 있더냐
그렇게 한 판 거는 거다

[시평]

진정한 삶이란 어쩌면 맵디매운 고추를 한 입 꽉 깨물고는, 그 매운 맛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흘리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어줍잖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 매운 맛을 못 봐서 그런다고, 속으로 끌끌 혀를 차고는 한다.

매운 맛! 참으로 사는 맛이기도 하다. 그래서 삶이 매슥거릴 때는 매운 고추장 한 숟가락 듬뿍 넣고는 썩썩 비벼, 새빨갛게 물들여 한 수저 그득 담아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는 땡볕에 약이 바짝 오른 고추들 툭툭 꺾어서 고추장 듬뿍 찍어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눈물 콧물 다 쏟아보라고, 삶의 맛이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일깨워주고 싶다.

삶이란 어차피 만만한 게 아니지 않은가. 만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줍짢은 모습으로 닝닝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덮썩 깨물었다가 매운 맛을 보고야 마는, 그렇게 한 판 걸어볼 때, 삶의 그 진가, 우리들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는 게 어줍짢고 매슥거릴 때, 매운 고추장에 썩썩 비벼, 스스로의 눈물 콧물로 스스로를 몰아갈 수 있는 그 마음의 용단, 때로는 우리들 삶에서 진정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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