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고대 삼국 가운데 수막새에 반원와(半圓瓦)를 사용한 나라는 고구려 뿐이다. 필자는 아직 백제 부여 궁성이나 신라도성에서 반원와가 출토한 사례를 찾지 못했다. 반원와는 원형의 수막새를 반으로 쪼갠 것으로 중국에서는 초기 기와에 사용한 숫법이다.

중국 와전의 시대상한을 학자들은 약 4천년전인 용산문화(龍山文化) 시기까지 올려 잡고 있다. 오래 전에 산시성(陜西省) 바오지시(寶雞市) 챠오전(橋鎭) 유적에서 통와(筒瓦), 판와(板瓦) 유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유물들은 매우 크며 막새의 길이가 55~58cm나 된다.

그러나 기와 문화가 발달한 것은 춘추전국시대다. 이 시기 반원와 문양을 보면 나무문, 동물문 등 다양하다. 반원와는 연(燕)나라 때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반원와에 도철문(饕餮紋.도깨비)을 새긴 것이 많은 데 크고 무늬도 특별하다. 서울 부암동에 있는 유금와당박물관(관장 유창종)에 춘추시대 반원와를 전시, 이목을 끌고 있다.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9.22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9.22

중국역사에서 가장 와당이 발전한 나라는 한대(漢代)이다. 이 시기의 와당은 매우 특별하며 권운문(卷雲紋)이나 문자와(文字瓦)가 발전했다. 한나라는 고구려 와당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고구려 반원와는 한나라 유물과 다른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반원와에 고구려인들은 각종 동물이나 풀무늬 화염(火炎), 인동(忍冬)문양을 새겼다. 용면이나 두꺼비를 새긴 것은 불교이전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원와는 고구려 초기 궁성의 장식물로 봄이 옳다.

여기 소개하는 반원와는 초문에 용면(龍面)을 새긴 특별한 상이다. 중앙에 등장하는 용면은 눈이 크고 입을 벌린 형상이다. 다른 용면보다 사실적이 아닌 양식의 퇴화를 보이고 있다.

용면 좌우에는 당초문양을 대칭 배치했는데 특이하다. 고구려를 상징하는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그릇(광개토대왕 하사)에 새겨진 ‘정(井)’자 문양을 연상시킨다. 반원의 외연은 1조의 선문으로 장식했으며 역시 주연은 무늬가 없는 소문대를 이루고 있다. 모래가 조금 섞인 경질이고 색깔은 적색이다. 크기는 가로 19cm 주연 1.8cm 두께 2cm이다.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9.22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19.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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