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6일 김리을 디자이너가  인터뷰에 앞서 자신이 제작한 한복 정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6일 김리을 디자이너가 인터뷰에 앞서 자신이 제작한 한복 정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7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갓을 쓴 흑인 남성이 보인다. 섬세한 수를 놓은 검은 색 ‘한복 정장’과 붉은 배경이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한복 원단으로는 정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김리을(27, 본명 김종원)의 ‘한복’이다.

“한복의 멋은 원단과 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름다운 한복 원단에 집중해 옷을 만듭니다.”

한복 정장을 입은 흑인이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문 모습을 담은 화보는 SNS 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천지일보 2019.9.17
한복 정장을 입은 흑인이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문 모습을 담은 화보는 SNS 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천지일보 2019.9.17

브랜드 ‘김리을’은 한복 정장을 입은 흑인 화보로 SNS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전통한복을 새롭게 계승한 젊은 디자이너의 행보는 꾸준한 러브콜을 받았다.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제이블랙, 가수 타이거JK, 모델 한현민 등 셀럽들이 그의 한복을 찾았고, 광복절을 맞아 최초로 한복 농구복을 디자인해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열린 ‘BY대한민국’ 팝업스토어의 메인 전시를 맡은 디자이너 김리을을 만나 한복에 대해 들어봤다.

- 상당히 젊다. 한복 디자인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3년 전인 25살에 디자인을 시작했다. 한복 원단은 바느질이나 수선 등 다루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장을 만들 때 사용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기에 한복 정장을 만들 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3~4개월간 많은 분을 만나 부탁한 끝에 한 한복 장인의 도움을 받아 첫 의상을 내놓을 수 있었다.

- 한복 정장을 만들게 된 이유는.

21살에 해외 여행을 갔을 때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는 외국인들을 보며 자부심을 가졌는데, 한편으로는 아이폰을 쓰고 있는 스스로에게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한 외국인 친구에게서 “한복 원단은 예쁜데 불편해서 너도 안 입는구나”라는 말을 듣게 됐다. 21세기 사람들에게 19세기 전통 한복을 입히니 불편하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예쁜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브랜드명을 왜 ‘김리을’이라고 지었나.

브랜드명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우리 ‘훈민정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외국인에게 ‘리을(ㄹ)’을 보여주면 외국인들은 숫자 ‘2’라고 읽는다. 그러면 ‘ㄹ’이라고 고쳐주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 김리을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3년 전에는 ‘문화에 한복을 입히다. 21세기 한복을 만들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면, 올해는 ‘한국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한복을 만듭니다’에 초점을 맞췄다. 한복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중국산 원단을 사용해 옷을 많이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이 들더라도 한국 원단을 사용해 한복을 제대로 만들려고 한다.

리을의 한복을 입은 모델들의 모습. (제공: 김리을 디자이너) ⓒ천지일보 2019.9.17
리을의 한복을 입은 모델들의 모습. (제공: 김리을 디자이너) ⓒ천지일보 2019.9.17
김리을의 한복을 입은 모델들의 모습. (제공: 김리을 디자이너) ⓒ천지일보 2019.9.17

- 한복 정장을 내놨을 때 한복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말이 많았을 것 같다.

한복의 멋은 원단과 선, 두 가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개량한복은 선을 살리되 일상생활에서 입기 편하게 소재를 바꾼 것이라면, 우리는 원단을 살린 것이다. “선이 다른데 한복 정장이 한복이 맞는가” 라고 말한다면 반대로 “원단이 다른데 개량한복은 한복이 맞는가” 라고 반문해볼 수 있다.

- 김리을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올해의 목표가 ‘항상 새로운 한복을 만든다’이다. 한 원단으로 한 벌만 만들다 보니 그동안 작업한 작품들도 모두 갖고 있다.

- 제작했던 작품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여자 의상을 만들었는데 좀 크게 제작이 된 일이 있다. 댄서 제이블랙이 걸리쉬(girlish) 댄스를 출 때 제이핑크라는 이름을 쓰는데, 마침 제작된 의상도 핑크 색상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옷을 드린 것이라 기억이 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6일 김리을 디자이너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6일 김리을 디자이너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9.17

- 한국을 알리는 분들에게 옷을 선물한다고 들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이종배 작가에게도 연락을 받고 한복을 드린 적이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 우리 독립운동가 대형 벽화를 그려 화제가 된 분인데 “한복을 입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렇게 한복을 입고 한국을 알릴 분들께는 옷을 드릴 의지가 있다.

- 앞으로 행보는.

처음 시작할 때는 스스로 한복 디자이너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MBC ‘1919-2019, 기억록’ 작업을 통해 옷을 제작하며 나만의 스타일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느꼈고, 계속 한복을 디자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 ‘BY대한민국’ 팝업스토어도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많은 분이 구매요청을 주셔서 내년부터는 판매를 진행하려고 한다. 또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일을 시작할 때 자본금 하나 없이 오로지 ‘한복으로 정장을 만들자’라는 생각만 갖고 뛰어들었다. “Just do it” 이라는 말처럼 청년들이 어렵더라도 뭐든지 시도해봤으면 좋겠다.

또한 많은 분들이 김리을의 한복을 입고 해외에 나가 한글과 한복,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릴 수 있게 돕고 싶다. 김리을의 한복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문화 국가대표’가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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