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 회장. ⓒ천지일보 2019.7.14
김덕권 회장. ⓒ천지일보 2019.7.14

명심보감(明心寶鑑) 제19장 교우편(交友篇)에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급(急)하고 어려울(難)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朋)라는 뜻이지요. 우리 덕화만발 가족 여러분께서는 어디서 벗을 구하시는지요? 저도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친구와 사람들을 사귀어 왔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 많은 사람들도 귀하지만, 덕화만발 가족처럼 소중한 분들은 따로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덕화만발 가족들은 서로 바라는 바가 없고, 생각과 사상이 같으며, 함께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향(指向)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벗의 사귐에 관해 맹자(孟子)의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사귀는 것이다(友也者, 友其德也).”

증자(曾子)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자는 글을 통해서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서 어 짐(仁)을 이루는데 도움을 받는다(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그리고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르기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동행하면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을 흠뻑 적시지는 않더라도 때때로 축축함이 있노라. 그러나 무식한 사람과 동행하면 마치 뒷간에 앉은 것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히지 않더라도 때때로 그 냄새를 맡느니라”고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평중(<晏平仲: ?~BC 500)은 사람과 사귀기를 잘하였으니, 오래되어도 그 벗을 공경하였노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되, 마음 알아주기를 능히 하는 자는 몇이나 되겠는가?

“술 마시고 먹고 놀 때,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사이는 천 개가 있으나, 위급하고 어려운 때 도와주는 벗은 하나도 없구나(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으려 하지 말고, 의리 없는 벗은 사귀어서는 안 되느니라(不結子花休要種, 無義之朋不可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시간이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어떻습니까? 정말 옳은 말씀이 아닌가요? 그런데 요즘 현실이 너무나 각박(刻薄)합니다. 그러하기에 이 성현의 말씀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을 때는 후하게 선심 쓰고, 좋은 말을 하며, 간이라도 빼줄 것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그렇게 잘 하던 사람이 막상 우리가 큰 시련을 맞았을 때, 외면한다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까요?

어떤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1년 공백기동안 진실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확실히 재정리가 되는 정말 값진 1년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의 친구들이 주식형제(酒食兄弟)인지,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또한 나도 그들에게 진정한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도반(道伴)과 동지(同志)의 잘못은 밀물에 지워지라고 모래 위에 적는 것입니다. 또한 도반, 동지의 고마움은 비바람에 견디면서 영원히 기억하라고 바위 위에 새깁니다. 또 친구의 눈물은 힘들면 비가 내릴 때 같이 울어주라고 구름에 올려놓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섭섭한 일도 생기고, 고마운 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럼 이와 같이 우리의 만남이 영원히 이어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대개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는 연고이니,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며, 그에 따라 혹 은혜 준 처지에서 나에게 섭섭함을 줄 때에는 의리 없이 상대하는 것 등이요,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준 후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며, 저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나에게 잘못할 때에는 전일에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더 미워하는 마음을 일어내는 것이라, 그러므로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고 도리어 원진(怨瞋)으로 변하여지는 것이니, 그대들은 이 이치를 잘 알아서 유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유념하고 무념할 자리에는 반드시 무념하여, 서로 사귀는 사이에 그 좋은 인연이 오래 가게 할지언정 그 인연이 낮은 인연으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할지어다.’

이렇게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좋은 인연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유념, 무념에 달려있다는 소태산 부처님의 말씀에 공감하시는지요? 제 인생을 돌아보아도 좋은 인연에서 유념할 때 그 사귐이 오래 가고, 무념할 때 오래 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한 번 뒤돌아봅시다.

우리가 인연에 있어서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까? 남에게 은혜를 입고 잊어버렸던 점이나, 은혜 준 처지에서 나에게 섭섭함을 줄 때는 의리 없이 상대한 적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인간관계에 다시는 실패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에서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요? 우리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준 후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며, 저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나에게 잘못할 때에는 전일에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더 미워하는 마음을 일어낸 적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또다시 인간관계에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남에게 은혜를 베푼 후에는 잊어버리고, 반대로 남에게 은혜를 입은 다음에는 꼭 은혜를 갚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보면 우리의 인연에 이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우리는 그리 하려 해도 세상이 가만 두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그 얼마나 배신과 불신에 몸을 떨어야 할 일이 그 얼마이었든가요?

그러므로 저는 우리 덕화만발의 도반 동지들만이 진정한 의미의 ‘급난지붕’으로 그 신의가 천년만년 영생토록 이어질 것이라 생각해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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