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경복궁 근정전과 품계석 ⓒ천지일보DB
경복궁 근정전과 품계석 ⓒ천지일보DB

조선 제일의 궁궐로 역할 톡톡
‘태평성대’라는 뜻 담겨져 있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백악산과 인왕산을 병풍 삼는 것은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택한 명당인걸까. 조선 500년의 역사의 첫 시작은 이곳에서부터였다. 궁궐을 대표하는 경복궁은 이를 증명하듯 꼿꼿한 자태를 뽐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경복궁은 5호선 광화문역과 3호선 경복궁역을 이용하면 찾아갈 수 있다. 경복궁은 서울을 안내하는 관광지도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 장소다. 그러다보니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상당히 많다. 인근 한복대여점에서 한복을 빌려 입은 외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선 제일의 궁궐

경복궁은 조선 제일의 궁궐로 꼽히는 궁이다. 태조 4년(1395년)에 창건된 조선 왕실의 정궁으로 5대 궁궐 중 규모와 건축에서 으뜸으로 여겨진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인데 왕과 그 자손, 그리고 온 백성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 ⓒ천지일보DB
경복궁 경회루 ⓒ천지일보DB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이다. 이 때문에 인근 지하철역도 이름이 같다. 광화문에서는 매일 2차례씩 수문장 교대식이 열린다. 조선시대 수문장청 소속 무관의 당직을 순번에 따라 교대하는 것을 재현한 것으로 교대식이 열릴 때마다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궁궐의 문화를 느낀다.

광화문을 지나 근정문에 들어서면 탁 트인, 시원스럽게 바닥에 펼쳐진 돌마당을 만날 수 있다. 또 이곳에는 위엄이 느껴지는 근정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근정전에서는 정종, 세종, 단종 등 임금의 즉위식이 열렸다. 또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 사신 접견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치러졌다. 경복궁 중 가장 중요한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근정전의 마당에 깔린 이 돌은 화강암이다. 이 돌은 햇빛에 반사돼 눈부시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거칠게 깎아 놓았다.

◆두차례의 수난과 복원

근정전 뒤편에는 왕의 공식적인 집무실인 사정전(思政殿)이 위치해 있다. 왕이 정사에 임할 때 ‘깊이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상참이라는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새벽 3~5시에 열렸다. 상참을 좋아했던 왕은 세종대왕이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상참에 참석했다.

이에 하루는 우의정 류관이 “주상께서 매일 오셔서 조회하시는 게 힘드실텐데 하루걸러 이틀에 한 번 씩 하면 어떠하온지요?”라고 아뢴다. 이에 대해 세종은 “우의정께서 매일 입궐하기 힘드신가 본데, 그런 말씀하시기 위해 오시려거든 다른 사람을 보내시오”라며 거절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경복궁 해치 ⓒ천지일보 DB
경복궁 해치 ⓒ천지일보 DB

그 뒤로는 왕과 왕비가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이 있다. 대왕대비가 거처하던 곳인 ‘자경전’도 있다. 특히 은은한 멋을 자랑하는 경회루가 있다. 사진을 찍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을 정도인 경회루는 경복궁의 꽃과 같은 장소다.

이 같은 경복궁은 두 차례의 수난이 있었다. 첫 번째는 수난은 ‘임진왜란(1592년)’이다. 건물이 이때 소실된 후 왕궁으로 불길하다는 이유로 270년간 방치된다. 그러다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됐다. 두 번째 수난은 1910년 ‘일제강점기’다. 그러다 1990년부터 경복궁 복원사업이 시작됐고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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