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의 첫 장에서 여행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우리는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는 말을 머리로만 알고 있으나 막상 눈앞에 닥치면 그 말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여행에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혼자 홋카이도로 떠나면 방황을 멈추고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리고 몇 년 후, 그의 아내, 아이와 함께 홋카이도에 다시 갔다. 이삿짐이나 다름없는 여행 짐과 육아용품을 챙겨야 했고, 모든 일정의 책임이 그에게 달린 고행길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여행에서 기대했던 것들을 그는 두 번째 여행에서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책 홋카이도 여행 에세이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은 바로 그 두번의 여행에 관한 책이다.

여행이 힐링의 한 방편이자 삶의 필수 행위로 여겨진 지 오래다. 많은 청춘이 배낭을 짊어지고 몇 개월씩 고생을 자처하고 직장인들도 휴가철에 어디로 떠날지 점치며 특가 항공권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고심 끝에 퇴사해 뒤로 돌아보지 않고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무용담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답답한 공기는 그대로였다. 내가 아주 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듯했다. 인생의 벽들, 돌부리들은 하루하루 증식했다.”

이 책의 저자 신태진도 자신이 그런 대열에 끼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벽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을 떨치기 위해 일본 홋카이도로 떠난 것이다. 폭설이 명물인 그곳에서 많은 눈을 맞고 싶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가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동안 눈은 한 점도 내리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변화는 몇 년 후, 가족과 함께 다시 간 홋카이도에서 일어났다.

이 책은 혼자 갔던 과거의 여정과 가족과 함께 한 현재의 여정을 병치하는 구성을 취한다. 여기에 저자의 고민, 지금은 아내가 된 여인과의 인연, 가이드북엔 나오지 않는 흥미로운 역사 등이 점층적으로 드러나며 어떤 면에선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저자는 여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방황하던 한 시기가 끝났고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백여 장의 사진은 마치 실제 여행을 다니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생생하다. 본문과 사진의 조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엇보다 이 여행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은 몇 개월씩 유럽이나 남미로 떠나는 누구나 시도할 순 없는 거대한 여행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홋카이도는 한국에서 세 시간 안으로 갈 수 있는 가까운 여행지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우리는 다채로운 감상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이 책은 희망과 용기를 준다. 
 

신태진 지음 / 브릭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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