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2.26

옛 남영동 대공분실인 ‘민주인권기념관’

 

2018년 12월 경찰에서 시민 품으로

시민 목소리 담아 2022년 정식개관

박종철 열사 숨진 현장 그대로

영화 ‘1987’ 촬영 현장으로도

일상의 소중함 느끼려면 ‘강추’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6월엔 6.25 전쟁, 6월 민주항쟁 등 근대사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중 6월 민주항쟁은 헌법이 현재의 모습으로 개정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자는 6월을 맞아 ‘민주인권기념관’을 찾았다.

민주인권기념관이란 이름이 생소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민주인권기념관은 최근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이 이름은 많이들 익숙할 테다.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했던 바로 그곳이다.

최근엔 영화 ‘1987’에서도 박종철 열사를 고문해 숨지게 한 장소로 소개돼 젊은 층도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지난해 6월 ‘제31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히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같은 해 12월,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관식이 열렸다. 대표적인 고문시설로 악명 높던 이곳이 민관에게 이관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장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과거엔 경찰이거나 민주화운동을 하다 잡혀간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면, 이젠 휴관일과 제외하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됐다. 온라인으로 방문 신청을 할 수 있고, 예약하지 않더라도 직접 방문해 관람신청을 할 수 있다. 비명과 고통이 가득했던 장소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참으로 궁금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신했어도 외관은 이곳이 고문이 자행됐던 곳임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사진의 빨간색 창문이 있는 곳이 각종 고문이 벌어진 5층. ⓒ천지일보 2019.6.2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신했어도 외관은 이곳이 고문이 자행됐던 곳임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사진의 빨간색 창문이 있는 곳이 각종 고문이 벌어진 5층. ⓒ천지일보 2019.6.28

시간을 맞춰 가면 자세하고 친절한 해설과 함께 민주인권기념관을 둘러 볼 수 있다. 기자는 해설 시간을 맞춰서 이곳을 방문했다. 해설 시간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엔 고등학교 학생들도 해설과 함께 관람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일행이 모여 제일 먼저 바라본 곳은 기념관의 외관이었다. 이름과 쓰임이 바뀌긴 했어도 기념관의 겉모습은 남영동 대공분실 그대로였다. 이곳의 입구는 두꺼운 철문으로 돼 있다. 보통 민주투사들은 눈을 가린 채 끌려왔는데, 마치 이 문을 여닫는 소리가 탱크 소리처럼 들렸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입구부터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그 이야기에 맞게 철문은 정말 두껍고 견고하게 보였다.

건물 외벽을 쳐다보면 유달리 좁디좁은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본관 5층의 창문이다. 5층의 창문이 이토록 좁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방안에서 고문으로 인해 나오는 비명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외부에서 안의 모습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리고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투신하거나 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창문을 작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고문의 편의성을 위해 구성된 곳이 분명했다.

본관 옆에 건물은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 1호선 남영역 건물과 평행하게 지어져 있다. 이 건물의 목적도 본관 5층 창문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영역에서 대공분실의 마당이 보지 않도록 시선을 차단하는 역할이었다. 이 때문에 남영역과 마주 보는 쪽의 벽엔 어떤 창문도 설치돼 있지 않다.

영화 ‘1987’의 스틸이미지. 영화의 여러 장면이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촬영됐다.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천지일보 2019.6.28
영화 ‘1987’의 스틸이미지. 영화의 여러 장면이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촬영됐다.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천지일보 2019.6.28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와 김윤석이 대면하던 장면이 촬영된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뒷공간. ⓒ천지일보 2019.6.28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와 김윤석이 대면하던 장면이 촬영된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뒷공간. ⓒ천지일보 2019.6.28

그런데 이 남영역과 마주 선 건물 사이의 길이 어딘가 익숙하다. 그렇다. 이곳은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최환 검사’와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원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처장’이 대면한 곳이다.

이 장소가 등장한 영화의 장면에서 최 검사는 박 처장에게 부검명령서를 들이밀며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하겠다고 말한다. 최 검사의 객기에 결국 부검이 진행 되고, 이는 영화 속에서 박 열사 죽음에 관련한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된다.

박 열사처럼 이곳에 끌려온 이들은 본관 정문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모두 본관 뒷문을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좁은 뒷문을 통과하면 엘레베이터와 철제 나선형 계단이 나온다. 엘리베이터는 성인 남자 3명만 타도 꽉 낄 정도로 좁고, 다른 층엔 서지 않고 5층으로 직행한다. 철제 나선형도 마찬가지다. 중간에 다른 층으로 빠질 수 없고, 오로지 5층에만 출구가 있다. 계단을 올라갈 경우 굉장히 좁은 간격으로 돌기 때문에 자칫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이 철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며 극도의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구성했다.

이윽고 5층에 도착하면 수많은 방과 마주하게 된다. 방문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혹 고문 받던 피해자들이 이 방을 나오게 되더라도 출구를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문도 안에서 열지 못하게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에서(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이 열린 가운데 한 시민이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를 둘러보고 있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박종철 열사 등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천지일보 2018.12.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에서(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이 열린 가운데 한 시민이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를 둘러보고 있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박종철 열사 등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천지일보 2018.12.26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가 숨진 방이다. 경찰은 박 열사가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망언을 했지만, 실제론 이곳에서 물고문을 받다 질식사 한 것이다. 방에는 침대와 욕조가 들어서 있다. 박 열사는 바로 이 욕조에서 물고문을 받았다. 다른 방들은 시간이 많이 흐르고 건물의 용도가 바뀌면서 옛날 모습이 많이 사라졌으나, 이 방만큼은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당시의 참혹한 기억을 후대에 전달하고 있다.

515호는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고(故) 김근태 전 장관이 고문을 받았던 곳이다. 방안엔 당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에게 고문 받을 때 사용했던 수건이 놓여있고, 이씨가 고문을 가할 때 활용했던 칠성판이 재현돼 있다.

이렇게만 보면 고통스런 흔적만 있는 것 같지만, 한쪽 벽면엔 김 전 장관이 봤던 시집도 놓여있다. 김 전 장관은 고문을 받고 머리가 너무 아파 책을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간신히 시집만 읽을 수 있어 시집을 주로 봤다고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이 시집들을 읽으며 차디찬 방 안에서 독재와 그리고 자신을 이겨나갔다.

이 건물 4층은 ‘박종철 열사 기념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박 열사가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부터 당시 동아일보 해직 기자로 진실을 알리는 데 이바지했던 이부영 전 의원의 편지까지 전시돼 6월 항쟁의 중요한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 또 벽면에 6월 항쟁에 대한 간략한 내용 정리가 돼 있어 1987년 상황의 전반적인 이해도 돕도록 짜였다. 친절한 해설사의 설명도 함께라면 더 풍성하게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고(故) 김근태 전 장관이 고문을 받았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인 민주인권기념관 515호. ⓒ천지일보 2019.6.28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고(故) 김근태 전 장관이 고문을 받았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인 민주인권기념관 515호. ⓒ천지일보 2019.6.28
민주인권기념관 4층에 보관된 박종철 열사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 일부. ⓒ천지일보 2019.6.28
민주인권기념관 4층에 보관된 박종철 열사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 일부. ⓒ천지일보 2019.6.28

현재 기념관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를 꼽자면 전시회다. ‘잠금해제’란 이름으로 6월 10일부터 열린 이번 전시회는 그 제목과 같이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를 기획한 측은 ‘잠금해제’라는 제목이 갇히고 결박당한 이들이 풀려나고, 그동안 은폐됐던 곳이 열리고 억울함을 풀어서 진실이 드러나는 기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잠금해제는 스마트폰을 여는 손쉬운 행위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의 잠금해제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이곳이 단순히 역사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닌, 현재성을 띤 대화의 공간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전시는 9월 29일까지 예정돼 있다.

경찰이 식당으로 이용했던 2층 건물엔 낡은 파이프가 있는데, 여기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극대화한 장치가 설치됐다. 그 이름은 ‘평범한 장치’다. 수많은 물고문이 자행됐을 본관과 그 잔인한 일을 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식사를 하던 이중적인 장소. 작가의 설명이 없더라도 이 모순을 이해하는 데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인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잠금해제(Unlock)’란 이름의 기획전이 열리는 가운데 전시된 작품명 ‘복사촬영’. 민주열사 등이 고문받던 방의 모습을 재현했다. ⓒ천지일보 2019.6.28
옛 남영동 대공분실인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잠금해제(Unlock)’란 이름의 기획전이 열리는 가운데 전시된 작품명 ‘복사촬영’. 민주열사 등이 고문받던 방의 모습을 재현했다. ⓒ천지일보 2019.6.28

본관 3층엔 ‘복사촬영’이란 설치물도 있는데 원래의 공간 흔적을 촬영해 다시 배치한 것이다. 붉은 벽 이미지를 보고 있자니 영화 ‘샤이닝’이 떠올라 절로 섬뜩해진다.

기념관 관람을 마쳤다면 선물도 있다. 1층과 4층, 5층엔 스탬프가 배치돼 있는데 이 스탬프를 모두 찍어 제출하면 소정의 기념품도 준다.

기념관을 둘러본 학생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경기 광명시 광휘고등학교에서 ‘한울림’이라는 역사 동아리 멤버들과 함께 온 박소은(17)양은 “사회에 관심은 많았지만 이런 곳이 있는 줄은 잘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던 역사를 알게 돼서 슬픈 기분도 든다”면서도 “사람들이 힘들게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싸웠는데, 이를 본받아 제 인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권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바로 이것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이 조성된 이유. 꼭 사회현상에 지대한 관심이 없어도 좋다. 일상이 소중함을 잊어버렸다고 해도 좋다. 영화를 재밌게 보고 나서 찾았다고 해도 좋다. 이곳을 들르고 나면 우리가 제법 많은 걸 이뤘고, 또 누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

경기도 광명시 광휘고등학교 역사 동아리 ‘한울림’ 학생들이 14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을 찾아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8
경기도 광명시 광휘고등학교 역사 동아리 ‘한울림’ 학생들이 14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을 찾아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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