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우산 

김미희(1964~  )

비 오는 오후에
걸려온 전화

밥은 먹었어?
낡은 우산 펴는 소리다

거친 아흔 해를 받쳐낸 늙은 우산
접고 있던 주름살을 펴고
은이빨 반짝이리라

부러진 살을 타고 내리는 빗물이
처진 어깨를 토닥거린다

젖는다
 

[시평]

부모는 우리에게 어떤 분일까. 우리 자식들을 위하여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아니 하시고자 하는, 아니 하고 계시는, 그러한 분들이시다. 비가 오면, 비 맞을세라,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덮어주고 또 떨어주고 보듬어주며 우리들 자식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하시는 분.

먼 고국에서 전화가 왔다. 미국이라는 머나먼 다른 나라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딸이 태평양 그 푸르름을 건너 온 어머니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의 첫마디는 늘 “밥은 먹었어?”이다. 우리를 평생 떠받쳐준, 그래서 이제는 살도 하나 둘 부러졌고, 천도 다소는 떨어져 나간 낡은 우산, 비록 지금은 낡았지만, 그 사랑의 우산 펼쳐 우리들 떨어지는 빗줄기를 막아주듯, 그 말씀 전화기를 타고 들려온다.

거칠고 힘든 아흔 해를 받쳐낸, 그래서 이제는 늙고 또 낡아버린 우산이나마 자식을 위해서는 언제고 어디에서고 기꺼이 펼치는 그 우산 같은, 아니 이제는 낡고 늙어 부러져 힘없이 쳐진 우산살 같은 엄마. 그 엄마의 사랑이 부러진 살을 타고 내리는 빗물처럼 우리들, 삶속에서 지쳐 처진 어깨를 오늘도 토닥거리며 적셔준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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