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거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모두 가능하다면서
실제는 4대보험 가입자만
 

육아휴직자는 무조건 안돼
형편 어려워도 복직이 해답


전문가들 대출심사 문제 지적
“정부·銀 불법사채로 서민 내몰아”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주요 포털이나 TV광고에 나오는 금융사의 대출상품을 보면, 마치 직장인은 누구라도 최대한도 금액을 까다롭지 않고 간편하게 받을 수 있을 것처럼 기대감을 품게 한다. 해당 금융사 홈페이지를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출상품 소개 문구를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은 4대보험 가입자만 가능하고, 비정규직자나 육아휴직자 등은 제외’라고 말이다.

▲월급 약 200만원을 받고 있지만 4대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직장인 A씨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월 15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고 있는 B씨 ▲4대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육아휴직중인 직장인 C씨 ▲그리고 대출진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주부 D씨. 이들은 모 신용평가회사에서도 2~5등급의 신용등급을 갖고 있어 비교적 신용도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이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이라면 대부분 노크해보며 대출접수를 했으나 모두 대출 불가였다.

A씨는 재직증명서와 원천징수영수증 등의 소득증명서류를 제출했으나 건강보험료납부확인서 서류를 추가로 요구받아 이를 제출하지 못하자 대출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본 기자는 1~2금융권인 은행과 저축은행 영업점에 문의해본 결과 4대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도 세금신고가 돼 소득증명만 되면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실제 영업점에서는 대부분 건강보험납입 증명서류까지 요구해 대출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회사에서는 비록 계약직이어도 전혀 차별받지 않고 따뜻하게 직원처럼 똑같이 대해주지만, 오히려 은행들로부터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긴급자금이 필요해도 대출받지 못해 비정규직인 게 이럴 때 서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 저축은행 홈페이지. 제출서류에 소득확인 서류가 있어 4대보험 가입 직장인 외에는 사실상 대출승인이 어렵다. ⓒ천지일보 2019.6.24
모 저축은행 홈페이지. 제출서류에 소득확인 서류가 있어 4대보험 가입 직장인 외에는 사실상 대출승인이 어렵다. (출처: 해당 저축은행 홈페이지) ⓒ천지일보 2019.6.24

B씨는 프리랜서라 재직확인서와 통장급여내역을 소득증명서류로 대신 제출하면 안 되냐고 했으나 정확한 소득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류접수 전부터 대출이 거부됐다.

육아휴직 중인 C씨는 유일하게 4대보험 가입 직장인이라 대출한도가 무난히 나왔다. 그러나 건강보험납부확인서를 받아본 금융사는 납입금액이 몇 달간 0원으로 돼있는 이유를 물었고, C씨가 육아휴직 중이라고 답했다. 이에 금융사로부터 “현재로선 대출이 안 되니 복직하면 다시 문의해 달라”는 답을 들으며 대출이 거절됐다. 주부인 D씨는 주부대출 상품이 있어 처음으로 대출을 진행해봤으나 신용등급이 2등급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이전 거래내역이 없어 대출이 어렵다”고 역시 거절됐다.

이같이 이들 모두 1~2금융권에서는 대출이 거절됐다. 물론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금융사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더 알아본다면 가능한 곳이 혹여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이름이 잘 알려진 금융사 여러 곳에 대출을 시도했으나 비슷한 이유로 거절돼 신뢰를 잃은 상태다.

본 기자가 금융사에 문의해본 결과 육아휴직은 무직으로 잡히기 때문에 복직 후에만 가능하고 휴직상태에서는 안 된다고 한결같이 답했다. C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의 조건에 대해서는 상담 후 맞는 상품으로 접수해봐야 알 수 있다며 그래도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C씨의 경우는 무조건 안 된다는 것. 정부가 서민들을 위해 내놓은 햇살론 정책상품도 근로자에게만 해당돼 육아휴직자인 C씨는 이마저도 안된다. 서민금융진흥원 상담사는 “채무조정이 아닌 이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상품에 육아휴직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C씨는 “공익광고에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고민하지 말고 사용하라고 권하는데, 고작 70만원 안팎의 육아휴직 고용보험금만 받으면서 어떻게 1년간 버티느냐”며 “은행들이 육아휴직중이란 이유로 무조건 대출을 안해주는데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결국 저출산 원인에도 은행들이 한몫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모 저축은행 홈페이지. 직장인, 프리랜서, 계약직근로자, 주부까지 신청대상이 가능한 것으로 돼있지만 4대보험 가입 직장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출 승인 가능성이 낮다. ⓒ천지일보 2019.6.24
모 저축은행 홈페이지. 직장인, 프리랜서, 계약직근로자, 주부까지 신청대상이 가능한 것으로 돼있지만 4대보험 가입 직장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출 승인 가능성이 낮다. (출처: 해당 저축은행 홈페이지) ⓒ천지일보 2019.6.24

은행과 저축은행들의 이 같은 대출심사 구조가 취약서민계층들을 결국 고금리 대부나 불법사금융으로 내몰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 회장은 “위와 같은 사람들한테 적합한 신용평가 기준을 만들어 금융 혜택이 가도록 해서 제1금융권이 포용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은행들이 오히려 서민들을 고금리나 사채시장으로 현재 내몰고 있다. 이는 결국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것이고, 자력으로 구제가 안 되기 때문에 또 국가에서는 예산을 들여서 구제하는 악순환과 예산낭비가 반복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 회장은 “은행들이 포용금융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안전한 이자놀이나 하면서 약탈적 금융을 일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원 부원장은 “정부가 가계부채 잡으려고 규제들을 적용하면서 소득은 강조되고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중심으로 감독하니 은행권 문턱이 높아 생계형 대출을 받으려는 저신용자나 취약계층이 가장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DTI(총부채상환비율)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좋은 의미에서 적용했지만 금융기관의 재량권이 줄어들어 서민취약계층은 제도권 금융시장에서 점점 퇴출되고 있다”며 이는 곧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게 된 꼴’이라고 진단했다.

남경현 KB미소금융재단 경영자문위원(서민금융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제2금융권까지 DSR이 강화돼 저소득과 저신용자들은 대부업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대부업마저도 심사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분위로 가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간다면 가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소득증빙 자료가 어려운 이들에게 세심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이 사람을 가려서 안전한 대출만 해주려는 제1~2금융권도 문제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정부가 서민취약계층을 대출빙자 보이스피싱 피해나 불법사채시장으로 내몰게 하는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어 대출심사 보완과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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