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강북노회장 및 총회 회계ㆍ재정부장 역임한 양회선 장로. ⓒ천지일보(뉴스천지)

사)한국기독교교정복지선교회 이사장 양회선 장로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3)” 이 성경 구절은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사무실에서 법무부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정복지선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양회선 장로의 명함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이 구절에서 양 이사장의 교정복지선교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사무실에는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것은 재소자들이 양 이사장에게 보낸 편지였다. 양 이사장은 재소자들이 보낸 편지들을 꼼꼼히 읽으며 답장해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며 흐뭇해했다.

그는 1999년 한국기독교교정복지선교회 3대 이사장으로 취임 후 지금까지 연임하고 있다. 양 이사장의 교정복지선교 열정을 선교회 임원들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교정복지선교회는 1984년 한국기독교교정복지선교중앙협의회라는 명칭으로 창립돼 1989년 법무부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승인받고 초교파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정선교단체이다.

교정복지선교회는 전국 교정시설에서 집회 상담 자매결연 세미나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했으며 무의탁·무연고자 재소자에게 영치금 지원과 법률 소송에 관한 상담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한장총 회계 및 한기총 재정위원 역임한 양회선 장로.ⓒ천지일보(뉴스천지)
◆ 사업 성공과 실패로 깨닫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 상내리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이후 옷 수선을 하기도 했고, 정미소도 하며 사업가의 모습을 양 이사장에게 보여줬다. 이로 인해 양 이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그는 순천에 있는 미션스쿨인 매산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당시에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히려 학교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는 것이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다가 뒤늦게 기독교학교인 숭실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교 졸업을 하면서 제약회사 판매사원, 화장품 수금사원 등의 사회경험을 했다. 그는 “선배의 권유로 출판사 경영을 제안 받아 부모님께 15만 원(당시 쌀 한가마니는 3000원)을 빌렸다”고 밝혔다. 출판사 경영은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할 정도로 사업이 번창해갔지만 회계 관리를 못 해 매출금 회수가 안 되며 회사가 부도가 났다.

그는 “빚쟁이들 피해 달동네로 이사를 다니기도 했고, 연탄가스를 마셔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며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양 이사장은 이때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신앙만이 그에게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던 중 교육용 슬라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전국 학교를 다니며 홍보했다는 양 이사장. 이후 그의 사업은 번창했다. (주)동양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OHP(시청각 교육 기구)개발했다. 양 이사장은 “사업이 잘되던 중 고혈압으로 쓰러지기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교만해질까봐 몸을 통해 알려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OHP는 학교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교육시스템으로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교회마다 홍보를 했고 주문도 많았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저희가 만든 OHP를 구입해 강의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주문이 쇄도했다”며 국가의 교육사업에 도움이 됐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했다.

 

▲ 법무부 교정청 교정위원 및 (주)동양아카데미 대표 역임한 양회선 장로.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는 사업과 함께 교회봉사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또한 사업으로 생긴 수입의 일부를 건축헌금으로 내기도 하며 겸손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그는 사업이 승승장구 하자 (주)아산전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미국까지 진출하며 사업을 키우려고 했지만 IMF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양 이사장은 “자신의 사업은 IMF로 인해 더 이상은 이어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며 “하나님께서 이후 사업이 아닌 교정복지선교에 달란트를 주셨다”고 고백했다.

 

◆ 교정선교에 힘을 쏟다
양 이사장은 교정복지선교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고 삶의 활력소를 느꼈다고 전했다. 교정복지선교란 재소자들을 신앙으로 교화해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며 믿음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역이다. 양 이사장은 지금까지 무신앙인들 위주로 도움을 주고 만남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재소자에게 다가가 하나님을 믿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선교활동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장기수 및 무의탁재재소자들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영치금 1만 원이었다. 재소자들은 이를 ‘만원의 행복’이라고 한다. 그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1만원이 없어 필요한 것들을 사지 못해 남에게 빌려야 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며 “재소자들은 돈의 가치를 떠나 교정복지선교회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영치금을 받은 재소자들은 어려운 동료가 있으면 편지를 통해 요청하기도 하며 재소자들에 희망을 준 사업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아산전자 대표이사 및 e-좋은이웃신문 발행인 역임한 양회선 이사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로 인해 교도소 내에서는 교정복지선교회의 소식이 전해졌고 예배들 드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됐다고 한다. 양 이사장은 “이사장을 맡은 이후 수만 명이 하나님을 믿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교정복지선교는 양 이사장을 주축으로 e-좋은이웃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전국에 있는 교정복지선교와 관련 소식을 전파했고 광고와 구독의 수입으로 더 많은 재소자에게 도움을 줬다. 또한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교도소선교를 위한 음악회’를 개최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또한 성경 및 찬송가 배포와 세례, 성경공부로 신앙심을 돈독하게 만들어 주어 사회에 나와서도 신앙의 힘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양 이사장은 “이제는 실제적으로 재소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정부 및 종교단체들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소자들이 출소하고 난 후 돈을 벌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하다”며 “땅을 주고 농사를 짓게 하며 사회 적응을 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재소자를 위한 후원금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관심과 사랑만이 범죄를 줄이고 재범률을 낮춰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소자들이 “담 밖으로 나올 때 보통사람으로 변해서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신앙인들의 교정사역에 동참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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