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에 위치한 한 선상 레스토랑에서 만난 임준희 작곡가가 자신의 음악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임준희 작곡가 “음악도 언어입니다. 음표로 된 언어말입니다”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작곡에 대한 그의 열정은 뜨겁다. 그냥 작곡이 아니다. 임준희 작곡가는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알고 있는 서양음악에 국악을 담아내 한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음으로 옮겼다.

그가 추구하는 음악은 대중과 무작정 ‘타협’해 이도저도 아닌 퓨전이 아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올곧이 지키면서 대중들의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는 “실험음악이 무조건 수준 높은 것은 아니다. 대중들과 소통하는 음악이야 말로 좋은 음악”이라며 딱 잘라 말한다.

임 작곡가는 끊임없이 창작하는 데 몰두한다. 시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시와 소설, 수필 할 것 없이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를 통해 영감을 주로 얻는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전공한 서양음악에 한국적인 색을 담을까 이리도 보고 저리도 봐 왔다.

최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혼불>을 오선지에 옮기기기도 하고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칸타타 형식으로 엮어 청중들에게 선보였다. 이뿐 아니라 2008 베이징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 공연된 창작오페라 <천생연분>은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임 작가는 오페라 전체의 음악을 담당했다. 게다가 올해 갈라쇼로 먼저 무대에 <카르마> 역시 그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창작오페라이다.

그가 한국적인 요소를 굳이 잡으려는 이유는 바로 ‘정체성’ 때문이다.

“현대음악을 꾸준히 배우면서 저의 정체성을 살려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또한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찾았죠. 결론은 ‘국악’이었습니다. 서양음악을 일방적으로 모방이나 답습하는 게 아니라 한국인 작곡가로서 우리 음악을 녹아들게 하려 했습니다.”

임 작곡가는 작품세계관이 뚜렷하다. 독특하지만 청중들과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한국적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곡을 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한국인들이 가장 피부로 느끼는 절실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게 되었단다. 그 문제는 바로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국내 현실이었다. 그래서 창작오페라 <카르마>와 교향시 <한강>이 임 작곡가의 손에서 번듯하게 탄생했다.

“한국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죠. 하지만 그 아픔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잊히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안타까워 <카르마>라는 작품으로 승화시켰어요. 올해 들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만 보더라도 사람들의 생사가 가장 큰 문제라고 느꼈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들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는 살얼음이 얼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어느 선상레스토랑에서 진행됐다. 잠시 한강을 감상한 후에 그는 “한강은 한민족을 잇는 강으로 평화와 통일을 상징한다”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듯, 한강은 민족의 영광이자 젖줄이다”고 운을 뗐다.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는 현대인들이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 한강을 임 작곡가는 위대하다고 평가했다.

국·양악의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나 청중들이 다시 찾거나 무대에 재차 오르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일회성으로 그칠 따름이었다. 하지만 임 작곡가의 작품은 국·양악과 국내외를 넘나들며 연주자들이 많이 찾는다. 대표적인 작품은 <댄싱 산조>이다.

“국악과 양악을 같이 내놓는 것은 서양음악에 익숙한 한국인과 해외 청중들에게 국악의 미를 들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독일에서 베토벤과 바흐 음악보다 그들의 양식이지만 국내 창작음악을 연주하라고 주문한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베토벤과 바흐의 음악을 늘 듣고 자란 독일인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작곡가에게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첫 오페라 작품이었던 <천생연분>이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큰 호응을 받아 애착을 두는 작품 중 하나다. 작품에서 혼례가 두 번 등장하는데, 첫 번째 혼례장면과 두 번째 혼례장면이 의미하는 바와 무대 구성을 독일 청중들이 정확히 짚어내면서 흥미로워했다. 독일인들 역시 자신들의 오페라라고만 생각했으나 한국식으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작곡관은 청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중들에게 아부하는 음악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들라는 이야기다.

“음악은 본래 사람들에게 무언가 메시지와 감동을 줍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실험은 충분히 했으니 음악을 만들라’고 지도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곧 인정하고 작업에 몰두하죠. 청중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구와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작곡가의 책임입니다.”

작곡 생활을 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다. 즐비한 모방은 곧 표절시비로 이어지고 또한 쉽게 생산된 음악은 금방 잊힌다.

“한국 전통적인 삶이 그렇듯 참고 기다리고 묵히는 숙성 과정이 창작활동에도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차차 변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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