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위원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손대현 국제슬로시티연맹 부회장(한국슬로시티본부 위원장)
여유 있을 때 사랑 베풀 수 있어… 자연·인간, 느림의 대명사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빨리빨리’ 문화가 도처에 있지만 요즘 국내 상황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특히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중화되면서 반응이 실시간으로 나타나다 보니 참을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령 지하철 문이 닫히는데도 몸을 억지로 끼어 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먼저 가겠다고 앞에 가는 이를 밀치고 휙 지나가는 모습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도심일수록 여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무엇이든지 상대방보다 속도가 빨라야 하며 많이 가져야 하고,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현대인들에게 깔려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과 자연을 찾자는 움직임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산업화로 파괴된 것을 회복하는 것을 골자로 ‘느림의 미학’을 설파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시에서 시작된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유럽을 넘어서 아시아 미주 등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참된 행복에 대해 손대현 국제슬로시티연맹 부회장이자 한국슬로시티본부 위원장에게 들어 보았다.

흔히 ‘슬로시티(Slow City)’라고 하면 산업화가 덜 되거나 이뤄지지 않고 도시보다 뒤처진 농어촌이나 두메산골을 떠올리지만 아니올시다.

“무조건 느리게 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슬로시티는 빠름과 느림, 디지털과 아날로그, 현대와 전통, 글로벌과 로컬, 도시와 농어촌, 삶의 양과 질의 조화이지요. 큰 톱니바퀴가 빨리 도는데 작은 톱니바퀴가 느리게 가자라고 말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슬로시티는 조화운동입니다.”

현대 사회는 ‘빠름’ 쪽으로 기우뚱 기울어져 획일화되고 있다. 빠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너도 나도 ‘빨리빨리’ 살고 있다. 원래 자연과 사람은 여유 있는 존재이다. 특히 사람이란 존재는 작고 느리며, 아날로그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이 여타 동·식물보다 느리다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본연에서 벗어나 디지털로 살아가려 애를 쓴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조화를 숭상했습니다. 홍익인간이나 이화세계, 화엄사상이 그 예이죠. 전통적으로 조화가 국가철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화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나라 주체성을 거부하는 꼴이겠죠?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손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급변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되면 전통과 자연, 사람 모두가 망가진다. 느리게 가는 자연법칙을 위배했기 때문이다. 이에 슬로시티는 자연법칙대로 살자는 취지를 바탕으로 작고(small) 느리며(slow) 지속할 수 있는(sustainable) ‘3S 운동’을 펼치고 있다.

“느림과 게으름은 엄연히 다릅니다. 느림은 자연 상태를 말하죠. 지금보다 사람들이 느려지면 사랑을 베풀 수 있고 배려할 수 있습니다. 급한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알죠. 사랑을 실천하려면 절대 빨리 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느림의 미학이죠.”

유럽은 산업화가 이뤄지기까지 250년 걸렸지만 한국은 군사정부 이후 불과 수십 년 만에 경제성장을 이뤘다. 산업화를 긴 시간 동안 이룩한 유럽은 물질문명에 회의를 느끼고 약 10여 년 전부터 자연회귀를 외쳤으나 한국은 아직까지도 ‘성장’을 바라보면서 경제지표에 미련을 두고 있다.

“20세기 영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생산위주’라는 것이죠.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어요.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여는 것인가’라는 감성시대가 도래했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어떤 기업이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드느냐, 가격을 어떻게 낮추느냐가 중요하지만 지금은 기본적으로 다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소비자 마음을 여느냐 마느냐가 중요하죠. 느림의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넘겼고, 경제대국이라 불리지만 행복지수에서는 200여 개국 중 102등을 차지했다. 반면, 부탄은 1인당 GDP는 1500달러로 낮지만 행복지수는 8등을 차지해 경제성장과 행복이 꼭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보였다.

“경제란 용어는 경세제민에서 나왔습니다. 백성을 구제하는 데 경제는 수단일 뿐 목표가 될 순 없어요. 행복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문화가 경제를 이끄는 문경입국(文經立國)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손 위원장은 슬로시티를 국내에 도입했고 어느 누구보다 슬로시티 알리미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국내에 지정된 슬로시티는 전남 완도군·장흥군·담양군·신안군과 충남 예산군, 경남 하동군과 더불어 경기도 남양주시, 전북 전주시로 총 8곳이다. 아시아대륙에서는 한국이 슬로시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손 위원장은 “슬로시티 규정상 특성이 같으면 불합격되는데 국내에 지정된 8곳은 개성이 각기 다르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세 가지 철학은 자연과 정체성, 공동체이다. 우리 전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지킨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지역은 5년마다 재평가를 받는다. 이로 인해 개발 제한을 받기도 한다.

“내년에 중간 평가를 해야죠. 평가는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탈락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슬로시티 운동만큼은 빠르게 확산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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