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안현준 기자]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1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1

“전두환, 광주방문해 사격명령”

“통신보안부대 기록 남아있다”

새로운 물증 확보 기대감 상승

전씨 ‘회고록’으로 불붙은 논쟁

40주년 전 진실 드러날지 주목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은 지도 39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쳐 새로운 헌법과 함께 민주주의는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 지난 2016년엔 헌법에 근거한 민주적 절차로 대통령이 탄핵 되는 초유의 일도 있었다. 이렇듯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5.18은 온전히 규명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감춰졌던 진실에 대한 증언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주목할만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1980년 당시 광주에서 미군 501여단 방첩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김용장씨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5월 21일 K57(제1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효용 당시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74명이 회의했다”며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사살명령이었다고 생각된다. (회의 이후 오후) 집단 사살이 이뤄졌기 때문에 당시 회의에서 사살명령이 전달됐다고 하는 게 저의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주장했다.

5.18 당시 광주에서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근무했던 허장환 전 특무부장도 이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그는 1988년 광주청문회에서 양심선언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허씨 역시 “그 사격을 제가 직접 목도했다”며 “‘앉아쏴 자세’에서 사격은 절대 자의적 구사(발포)가 아니다. 그건 사살이다. 전씨는 사살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왼쪽)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5.13
[천지일보=안현준 기자] 김용장 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왼쪽)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특별기자회견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5.13

또 이들은 시신 소각·유기 정황에 대해서도 증언했다.김씨는 “군은 가매장한 시신을 재발굴해 일부는 광주통합병원에서 소각했고, 최근 언론 보도대로 일부는 김해공항 등으로 수송됐다”고 밝혔다.

허씨는 “시민군이 평정된 뒤 시민 사살자 중 간첩이 있을 수 있으니 엄중히 가려내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당시 임무에 투입된) 공수특전단은 가매장 위치를 좌표로 표시해 보고했다. 가매장된 시신을 다시 발굴한 것은 지문을 채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전씨의 광주방문은 전씨의 책임을 입증할 중요한 쟁점이다. 이와 관련, 당시 광주에 주둔하던 통신보안부대가 타 부대 통신 내용을 몰래 수집한 ‘방탐(方探) 기록물’이 전씨의 광주방문 때 상황의 물증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보안사령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로부터 나왔다.

그는 “전씨가 최측근인 정호용 특전사령관까지 방탐할 정도로 누구도 믿지 않았다”면서 “(부대가 사용한) 마이크로필름엔 음성이 고스란히 저장돼 왜곡·변조를 할 수 없다. 여기에는 전 씨가 광주를 오간 상황뿐만 아니라 광주 항쟁 당시 군 내부의 은밀한 교신들이 모두 들어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9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전씨의 회고록이 큰 영향을 끼쳤다. 전씨는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언에 대해 부정하면서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전씨는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은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천지일보 2019.5.17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은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천지일보 2019.5.17

올해 3월 11일, 전씨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39년 만에 다시 광주 땅을 밟았다. 군 지휘관이 아닌 법의 심판대에선 피의자 신분이라는 것이 당시와의 차이였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역시 헬기 사격 여부였다. 전씨 측 법률 대리인 정주교 변호사는 5.18 당시 헬기 사격설, 특히 조 신부가 주장한 5월 21일 오후 2시쯤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의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한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허위사실로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잘못됐다고 공소사실 일체를 부인했다.

정 변호사는 “전 전 대통령은 본인의 기억과 국가 기관 기록, (1995년) 검찰 수사 기록을 토대로 확인된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했다”며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기록해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헬기 사격을 실제로 목격했다는 증언은 쏟아졌다. 앞서 말한 허 전 특무무장 외에도 전씨 재판에 직접 출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한 광주시민들도 많았다.

지난 13일 열린 전씨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모씨는 당시 해군 대위로 군의관 신분이었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평소 친분이 있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걱정돼 그가 머물고 있던 양림동 선교사 마을을 찾았다. 그때 피터슨 목사는 자신의 집 2층에서 상공에 떠 있던 헬기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밝혔다. 피터슨 목사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광주에서 활동했던 침례교 선교사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지난달 16일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전두환씨 등 자유한국당 5.18망언 의원 규탄대회가 23일 오후 5시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옛 도청)에서 진행된 가운데 시민들이 “전두환은 5.18 영령 앞에 사죄하라”고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3.23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지난달 16일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전두환씨 등 자유한국당 5.18망언 의원 규탄대회가 23일 오후 5시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옛 도청)에서 진행된 가운데 시민들이 “전두환은 5.18 영령 앞에 사죄하라”고 외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9.3.23

김씨는 “피터슨 목사가 ‘어떻게 헬기에서 시민을 향해 사격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피터슨 목사의 집에 도착 했을 무렵 나도 헬기사격을 목격했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났다”고 설명했다.

헬기사격을 직접 경험한 증인도 있었다. 당시 승려였던 이모씨는 “3∼4명과 함께 광주천변 도로를 지나던 중 헬기가 일행이 타고 있던 차량을 향해 총을 쐈다”며 “총알을 피하기 위해 운전자가 지그재그로 운전했다. 총알이 떨어진 도로에 불꽃이 튀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차량 주변 인도 옆에 여고생(추정)이 어깨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과다출혈로 사망할 것 같아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적십자 병원으로 이송했다”며 “병원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병원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고 끔찍했던 기억을 되짚어 봤다.

또 다른 증인 정모씨는 “그동안 TV에서 5.18 뉴스만 나오면 전원을 꺼버렸다. 그 날의 고통이 떠올랐기 때문”이라면서도 “최근 (전씨 측의)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취지의 뉴스를 보고 이 자리까지 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전씨 측 태도가 증언 계기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상징 공간인 광주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이 헬기에서 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4일
5.18민주화운동 상징 공간인 광주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이 헬기에서 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4일 "옛 전남도청 쪽에서 금남로 방향으로 돌면서 사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1980년 5·18 당시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주변에 헬기가 날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15일엔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엔 “각하께서 ‘굿 아이디어’”라는 메모가 있다. 충정작전은 5.18 당시 최후의 유혈진압 작전이었다. 전씨가 유혈진압의 최종 승인권자라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나온 것이다.

새로운 증언과 증거가 공개되면서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14일 “시신의 지문기록 및 수장 증언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39년간 밝혀지지 못한 사망자, 실종자, 행방불명자 등 희생자들의 비밀을 풀 중요한 열쇠”라면서 진상규명위 출범을 촉구했다.

1988년 ‘광주청문회’, 1995년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2005년 ‘국방부 과거사조사위원회’까지 수차례 진실 규명 시도가 있었지만, 광범위한 기록 은폐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과거사위를 통해 헬기사격이 재조명되고, 최근 증언으로 발포명령자에 대한 새로운 물증이 확보될 거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과연 그날의 진실이 40주년 전에는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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