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의 침략이 무서운 게 아니라 당쟁과 부패가 더 무섭고 위험하다는 말처럼 온 나라가 혼수상태다.

지도자의 제일 덕목은 국민통합이다. 이 국민통합을 위한 지도자의 첫 걸음은 협치다. 문대통령은 2년 전 대통령 당선 취임사를 통해 “나를 지지한 사람은 물론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원로들과의 만찬에서 원로들이 협치를 주문하자 문대통령은 한마디로 거부했다. 이유는 적폐청산이 전제돼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원로들의 충정어린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원로들의 이 같은 주문은 이 나라가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 협치가 실종되고 이념과 당쟁으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반목(反目)과 질시(嫉視)가 도를 넘는 가운데 나온 충언이었다. 특히 괄목할만한 부분은 충언한 분들이 대부분 문대통령과 같은 이념과 노선을 견지해 왔던 진보계 원로 분들이라는 점이다. 

문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협치 실종 지적은 정치공세가 아닌 그야말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발로에서 기인된 진정성 있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언이었음을 방증해 주는 것이며, 누가 보더라도 이 나라의 협치는 실종됐음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금번 문재인 대통령의 조건부 협치 발언은 국민을 상대로 한 아집이며 오기에 찬 발언이라는 인상이 짙게 묻어난다. 분명 적폐는 청산돼야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이념과 자기 사람에 편중된 통치 스타일은 적폐라는 단어마저 국민들로 하여금 피로감만 더해주고 있다.
 
특히 갈라진 한반도에서 협치를 통한 국민 통합은 너무도 중한 권력자의 몫이며 무한책임임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협치 만큼은 최고 권력자 내지 힘 있는 쪽에서 손을 내밀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사안이기에 그저 안타까운 따름이다.

과거 정권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은 있었겠지만 치열한 당쟁 속에서도 물밑에선 지도자들의 만남과 대화와 국민을 위한 진정어린 협치로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협치가 결국 오늘의 이 역사를 만들어냈고 이어왔음을 싫겠지만 인정해야만 한다.
 
제1야당 대표가 새롭게 선출됐어도 영수회담 한 번 하지 않는 권력자의 협치 의식은 안쓰러울 정도로 보기가 민망하다.

취임식 때 천명한 약속은 사라지고 오직 내 편과 내 생각과 내 이념만 있을 뿐 나라와 국민은 권력자의 의식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 겉으론 쟁반과 커피 잔을 직접 들고 다니며 가장 협치를 잘할 것만 같았던 그 분이 가장 오만과 독선적인 권력자로 역사에 남지 않을까 염려가 앞선다.

지나간 역사에는 부정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좀 인식했으면 좋겠고, 범사에는 긍정과 부정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깨닫는 게 중요하다. 어찌 긍정의 역사만 있을 수 있겠는가. 왜 일제의 잔재도 남기고 보존해야 한다고 하는가. 반면교사라 하듯, 부정의 역사가 있기에 긍정의 새 역사를 일궈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와 정권의 잘못을 구실삼아 지난 세력을 적폐로 몰아 끝장을 봐야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비약된 논리다. 지난 정권이 잘못됐으면 심판하기보다 오늘의 우리가 다시는 그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진정한 적폐청산이 아니겠는가. 보복은 보복을 낳게 되고, 보복이 두려워 정권유지를 위한 또 다른 음모가 싹이 트면 그것은 또 다른 신(新) 적폐를 양산하게 되니 함부로 정의를 앞세워서도 안된다. 

군 최고 지휘관들에게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신뢰구축을 강조한 다음 날 북한은 보란 듯 동해로 방사포 실 사격을 실시하며, 김정은은 “힘으로만 평화를 담보할 수 있으니 어떤 위협에도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동해안 철책선이 절단된 지 이틀 후에 그 사실을 발견했으면서도 절단된 지 이틀밖에 안 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식의 군 당국의 발표를 보면서 언제부터 이 나라의 안보개념이 이렇게 변했는가 싶을 정도다. 

평화와 통일을 싫어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매사가 순리와 이치를 벗어나 아집과 오기와 자기 신념으로 평화 통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와 통일이 참으로 필요하다면 철통같은 안보의식과 태세가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듭되는 외교부의 망신스런 추태 또한 도를 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생존권마저 잃어가고 있어도 공무원들은 봉급이 올라가는 불평등 현상, 나아가 경제침체와 민생고에 아우성 소리는 하늘을 덮고 있어도 기초 경제가 튼튼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위로 아닌 위로로 서민들의 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협치실종, 경제실종, 외교실종, 안보실종, 나아가 기강해이는 이 나라를 총체적 난국으로 이끌며 위기로 몰고 있다.

내편의 목소리가 백성의 목소리라 애써 위안삼아서는 안 된다. 내편이 아닌 백성이 곧 하늘이다. 기분이 나빠도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자칫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분별력을 잃게 되면 그 끝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