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안 모습ⓒ천지일보 2019.5.3
전시장 안 모습ⓒ천지일보 2019.5.3

국립한글박물관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 展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뒷면 애달다 어리하리.’

조선시대 사대부 송강 정철이 어버이에 대해 효를 노래한 작품이다. 하지만 원래 이 글씨는 조선시대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이 77세에 쓴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간절히 생각하고 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담겼다.

이와 관련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 전시를 마련했다. 이는 덕온공주 가족과 후손들의 왕실 한글 유산을 최초로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자경전기, 앞에서부터 덕온, 윤백영, 윤용구가 기록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천지일보 2019.5.3
자경전기, 앞에서부터 덕온, 윤백영, 윤용구가 기록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천지일보 2019.5.

◆조선 마지막 공주인 덕온공주

덕온공주(1822~1844)는 조선의 제 23대 왕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오빠와 언니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와의 관계가 더욱 각별했다. 혼인한 이후에는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덕온공주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 많은 양의 한글 자료를 남겼다.

특히 덕온공주가 순원왕후의 명으로 순조의 ‘자경전기(慈慶殿記)’를 한글로 풀어쓴 ‘ᄌᆞ경뎐긔’는 조선 왕실 3대에 걸친 효성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덕온공주의 할아버지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 안에 ‘자경전(慈慶殿)’을 지었다.

혜경궁의 뒤를 이어 자경전에서 지냈던 정조 비 효의왕후는 순조에게 자경전에 대한 내력을 글로 지으라고 명했다. 혜경궁을 잘 섬겼던 정조와 효의왕후의 마음이 순조에게 이어지고, 다시 덕온공주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 동시에 군왕에게는 나라의 안위를 지키고 태평성대를 불러오는 가장 근본이 되는 마음가짐이었다. 조선 시대에 부왕이 한문으로 쓴 글에 담긴 뜻을 공주가 이어받아 한글로 옮겨 쓴 사례는 극히 드물다. 5미터 넘는 길이의 종이에 정성스럽게 쓴 ‘ᄌᆞ경뎐긔’에서 부모의 가르침을 받들고자 했던 공주의 효심이 잘 담겼다.

고문진보언해(고려대학교 소장)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천지일보 2019.5.3
고문진보언해(고려대학교 소장)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천지일보 2019.5.3

◆덕온공주 아들 윤용구, 여성 위해 쓴 한글 역사서

덕온공주의 양아들 윤용구는 방대한 분량의 중국 역사서를 한글로 편찬했다. 한문에 능통했던 윤용구가 고종(1852-1919)의 명으로 여성들을 위한 중국 역사서 ‘정사기람(80권)’과 중국 여성 열전 ‘동사기람(10권)’을 한글로 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 남성이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글로 쓴 예는 많으나 한글 역사서를 쓴 예는 적으며, 중국 역사 전체를 여성들을 위해 직접 짓고 쓴 예는 없었다.

왕실의 한글 궁체는 현대로 이어졌다.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에 의해서다. 윤용구의 딸 윤백영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한글 글쓰기를 이어 받아 평생 한글을 쓰고 가꿨다.

궁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궁할머니로 불린 윤백영은 왕실 문화와 한글 자료에 대한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이 집안에 전해오는 다수의 한글 자료 필사자와 관련 내력을 알 수 있는 것도 윤백영의 기록 덕분이다.

윤백영은 42세였던 1929년 한글 궁체로는 처음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이후 많은 한글 서예 작품을 남겨 왕실 한글 궁체의 품격을 오늘날 우리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한편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 전시는 8월 18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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