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서울 종로구 동묘 입구 모습. ⓒ천지일보 2019.4.15
서울 종로구 동묘 입구 모습. ⓒ천지일보 2019.4.15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빈티지의 핫플레이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은 중고물품의 천국이다. 옷, 신발, 가전제품, 악기, 시계, 휴대폰, 냉장고 등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어 벼룩시장의 끝판 왕이라 불린다. 그런데 이곳 동묘가 삼국지 속 명장 관우(關羽)와 관련 있는 장소인 것을 아는가. 벼룩시장과는 다른 감성을 들여다봤다.

◆중국 관우의 사당, 왜 있을까

“옥은 부서질지언정 그 흰빛을 잃지 않으며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곧음을 잃지 않는다. 내 몸은 비록 죽을지언정 그 이름은 죽백에 남을 것이다.”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 관우가 남긴 비장한 말이다. 학창시절 역사를 배우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는 관우. 역사를 잘 모른다고 해도 관우는 중국사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사당이 타국인 서울 종로구에 있으니, 바로 동묘다.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가면 찾을 수 있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로 관왕묘, 관제묘라고도 한다. 현재 보물 제142호로 지정돼 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묘 입구에 걸린 현판 ⓒ천지일보 2019.4.15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묘 입구에 걸린 현판 ⓒ천지일보 2019.4.15

중국의 장수를 우리나라에 모시게 된 연유는 우리의 의지라기보다는 중국의 입김 때문이다. 임진왜란(1592)이 끝나고 명나라에서는 “우리가 군대를 보내 왜군을 물리칠 당시 영령이 비범한 관우의 신령이 나타나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묘를 세워 공을 갚는 게 마땅하다”며 신종이 친필로 쓴 편액과 건립기금을 함께 보내왔다. 이에 조선 선조 34년(1601)에 할 수 없이 동묘를 짓게 됐다.

이곳 외에도 관우를 모신 사당으로는 선조 31년(1598) 남관왕묘가, 고종 20년(1883)에는 북묘가, 광무 6년(1902)에는 서묘가 세워졌는데, 지금은 동묘만 남아 있다. 동묘는 이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제대로 격식을 갖춘 대표적인 관우 사당이다.

관우를 모신 정전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6칸으로 직사각형 형태다. 건물의 측면과 후면의 벽체를 벽돌로 쌓아 호화롭게 장식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당과는 다른 형태로 중국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본전 내부에는 목조상이 있고 관우의 장남인 관평, 4인의 무인상도 모셔져 있다. 특히 관우의 모습은 금빛 의상을 걸치고 있다. 현재 동묘는 보수정비공사로 5월 초까지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서울 종로구 동묘 벼룩시장에 중고물품을 둘러보는 인파로 가득하다. ⓒ천지일보 2019.4.15
서울 종로구 동묘 벼룩시장에 중고물품을 둘러보는 인파로 가득하다. ⓒ천지일보 2019.4.15

◆“골라골라” 산더미로 쌓인 옷에 눈길

사실 동묘는 벼룩시장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동묘를 둘러싼 담벼락 아래로 꾸려진 벼룩시장은 다양한 물건이 진열돼 있다. 그 중 눈에 확 띄는 것은 역시 산더미같이 쌓인 옷들이다. 2000원, 3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을 보고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 “골라, 골라!” 외치는 상인의 목소리는 더욱 우렁차진다.

눈썰미만 있으면 ‘내 옷’을 찾을 수 있다. 이리저리 섞여있는 옷들을 파헤치는 분주한 손길들. 그러다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찾으면, 누가 가져갈까봐 시민들은 냉큼 한쪽 팔에 옷을 걸쳤다. 외국인도 이 풍경이 재밌는 걸까. 주변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보물을 찾고 있었다.
 

동묘 벼룩시장에 책과 중고 물품 등이 진열돼 있다. ⓒ천지일보 2019.4.15
동묘 벼룩시장에 책과 중고 물품 등이 진열돼 있다. ⓒ천지일보 2019.4.15

신발도 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짝을 맞춰 길바닥에 줄지어 펴 놓인 신발. “5천원, 얼른 고르세요”라고 말하는 상인의 목소리가 유난히 달콤했다. 유리구두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0초. 발만 쑥 넣어보면 되니, 누구든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이곳은 중고 가전제품의 천국이다. 옛날 라디오부터 레코드판은 물론 춘향전·구운몽 등을 담은 딱지본까지 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옛 물건들이 이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다. 운이 좋으면 사료가 깊은 유물까지 발견하니 역사학자들도 즐겨 찾는다.

이 같은 동묘는 그야말로 1970년대를 방불케 한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그러면서도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잠시나마 즐거움을 얻고 갈 수 있는 사람 향기 가득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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